Page 30 - 대한사랑_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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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은 생각건대, 단군과 기자 이후로 강토가 분리 이어받았고 국토는 공고히 다져져 우리 자손들에
되어 각각 한 지역을 차지하고는 서로 패권을 다 게 만대토록 길이 전할 반석같은 터전을 남겨 주
투어 오다가 고려 때에 이르러서 마한·진한·변한 었다.
을 통합하였으니, 이것이 ‘삼한(三韓)’을 통합한 것 짐이 덕이 없다 보니 어려운 시기를 만났으나 상
이다. 제(上帝)가 돌봐주신 덕택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우리 태조가 왕위에 오른 초기에 국토 밖으로 영 안정되었으며 독립의 터전을 세우고 자주의 권리
토를 더욱 넓혀 북쪽으로는 말갈의 지경까지 이 를 행사하게 되었다. 이에 여러 신하들과 백성들,
르러 상아·가죽·비단을 얻게 되었고, 남쪽으로는 군사들과 장사꾼들이 한목소리로 대궐에 호소하
탐라국을 차지하여 귤·유자·해산물을 공납으로 면서 수십 차례나 상소를 올려 반드시 황제의 칭
받게 되었다. 사천리 강토에 하나의 통일된 왕업 호를 올리려고 하였는데, 짐이 누차 사양하다가
(王業)을 세웠으니, 예악과 법도는 당요와 우순을 끝내 사양할 수 없어서 올해 9월 17일 백악산의
남쪽에서 천지에 고유제를 지내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정하고 이해를 광
무(光武) 원년으로 삼으며, 종묘와 사직의 신위판
(神位版)을 태사(太社)와 태직(太稷)으로 고쳐 썼다.
왕후 민씨를 황후(皇后)로 책봉하고 왕태자를 황
태자(皇太子)로 책봉하였다.
이리하여 밝은 명을 높이 받들어 큰 의식을 비로
소 거행하였다. 이에 역대의 고사(故事)를 상고하
여 특별히 대사령(大赦令)을 행하노라.(『고종실록』
36권, 고종 34년 10월 13일 양력 2번째 기사)
이로써 500여 년 간 이어졌던 조선 왕조는
막을 내렸고 마침내 새로운 국가로서 대한제국
이 열렸다. 고종황제의 근대국가로의 지향, 그
것은 ‘조선’ 왕국의 ‘대한’ 천자국으로의 전환
이었다.
고종황제 어진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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