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대한사랑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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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진묘



            의무려산신을 모신 북진묘

              의무려산을 동서로 가로질러 1시간을 더 달
            려 오후 2시가 다 되어 북진시에 위치한 북진

            묘에 다다랐다. 북진묘는 수나라 문제가 산신

            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웠다. 그 이후 수양
            제와 당태종이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의무려산                         북진묘 내 비석

            을 전략적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이곳은 중국 12대 명산 중의 하나이면서 동                   한 곳이기도 하다.
            북지역에서는 장백산, 천산과 함께 3대 명산으                     북진묘 내부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는데 누

            로 본다. 중국 역사에서도 주나라 시대부터 청                    군가가 가리킨 비석의 일부 내용을 보니 의무

            나라 때까지 천제를 지냈다는 전시물들이 눈에                     려산을 과거에는 ‘태백산(太白山)’으로 불렀다는
            띄었다. 우리 역사에서 광개토태왕비에 나오는                     기록이 보였다. 의무려산을 넘어오는 길에 생

            ‘부산(富山)’을 의무려산으로 보기도 한다. 또한                  각했던대로 태백산이란 명칭이 어색하지 않았
            『삼국유사』에서 단군조선의 도읍지 이전 기록                     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산신(山神)을 모신

            에 등장하는 ‘백악산 아사달’을 의무려산 지역                    ‘침궁(寢宮)’이 있었는데, 산신 내외를 함께 모시

            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또한 조선의 실학자 홍                    고 있었다. 다음 일정을 위해 전시관 관람을 마
            대용(洪大容)이 연행에서 돌아오는 귀국길에  의                   치고 숙소가 있는 금주시로 향했다. 금주시는

            무려산(醫巫閭山)에 올라 인상 깊었던 것으로 내                   요서회랑의 교통의 요충지이다. 다음 호에 이
            용을 그의 저서인 『의산문답(醫山問答)』에 기록                   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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