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대한사랑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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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민족을 대표하는 33인이 모여 평화적인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며, 대한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천명(闡明)하였다. 바로 3.1 혁명으로 이는 식민 지배를 받는 피억압
민족에게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인류 역사의 대사건이다. 이 3.1 혁명의 취지를
드러낸 글이 기미독립선언서이다. 글 초안자는 나중에 친일파로 변절한 육당 최남선이
고, 대원칙을 세운 사람은 의암 손병희였다. 이 독립선언서는 다른 선언에 비해 상당히
온건하고, 문장력은 깔끔하고 수려한데, 한문 투 표현으로 다수의 민중이 읽기에 쉬운
문장은 아니다. 지금도 그다지 읽기 쉽지 않다. 자칫 독립 의지를 나타내기에 부족한
듯한 독립선언서에 간결하게 행동 방향을 잡은 게 공약 3장이고. 이것을 쓴 이는 민족
세력을 규합해 독립운동하고 일제의 압력에 조금도 굴하지 않았던 만해 한용운이다.
충청도 사람 한용운
한용운은 1879년 기묘 8월 29일(음력 7월 12일)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491번지에
서 태어났다. 대한 국권 피탈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대한의군 참모 중장 안중
근과 동갑내기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부친은 응준(應俊)으로 이양공(夷襄公) 한명진
(韓明溍, ?~1454)의 후손이다. 한명진은 압구정(狎鷗亭) 한명회(韓明澮)의 동생으로 수양대군
을 도와 계유정난에 가담하여 공신에 봉해진 인물이다. 모친은 온양 방씨로 차남이다.
온양 방씨는 계유정난에서 희생된 절재 김종서와 사돈지간으로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만해 한용운 생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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