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 - 대한사랑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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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는 페르시아군이 해상으로 공격해왔는데,                      쪽의 불가르족이 들고 일어났다. 632년 훈족

            당시 페르시아 군은 육상의 아바르군과 연락                      의 후예들로 이루어진 불가르족이 아바르에 대
            하여 협공을 도모하였다. 비잔틴제국은 페르시                     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전까지는 아바르

            아 해군과 싸워 해전에서 승리하여 국가 존망                     의 동맹으로서 아바르인들의 정복 전쟁에서 충

            의 위기를 벗어났다.                                  실한 역할을 하였던 불가르족은 쿠브라트라
                                                         는 인물의 주도하에 반란의 기치를 올렸다. 아

            동유럽 아바르 제국의 약화                               바르와 함께 626년 비잔틴제국의 공격에 나선
              626년 7월 말 10일간 계속된 아바르 연합군                 바 있던 불가르 왕 쿠브라트는 아바르 카간이

            의 콘스탄티노플 공격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                      죽자, 이번에는 카간의 자리를 불가르족이 차

            는데, 그로부터 아바르 제국은 동유럽에서 지                     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요구가 불
            배권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오늘날의 동부                      가르인들과 아바르인들 사이의 내전을 촉발하

            독일 엘베강 주변에 정착하였던 슬라브인들이                      였다고 한다. 아바르에게 승리를 거둔 쿠브라
            먼저 독립의 움직임을 보였다. 당시 이 족속을                    트는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지역의 돈강으로부

            ‘조르벤’이라 하였는데, 오늘날 세르비아의 주                    터 흑해 북안에 걸친 아바르제국의 동부를 차

            류를 이루는 ‘세르브’와 같은 말인 것 같다. 앞                  지하고 불가리아 제국을 세웠다. 이것이 비잔
            에서 언급하였던 《프레데가르 연대기》에 의하                     틴인들이 말하는 ‘옛 대불가리아’였다. 이후 아

            면 당시 슬라브인들과 무역거래를 하던 ‘사모’                    바르제국은 판노니아와 발칸 지역으로 그 영역

            라는 이름의 프랑크 상인이 아바르에 대한 슬                     이 축소되었다.
            라브인들의 반란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슬라                       쿠브라트 사후 대불가리아는 볼가강 지역에

            브인들은 사모를 자기들의 지도자로 세웠다.                      근거지를 둔 카자르에 의해 멸망하였다.(668)

            사모는 35년 동안 슬라브족을 이끌었는데, 그                    카자르는 서돌궐에서 떨어져 나온 투르크인들
            의 뛰어난 용기와 신중함 덕분에 슬라브인들은                     의 나라였다. 쿠브라트의 다섯 아들은 아버지

            아바르와의 여러 차례 대결한 끝에 아바르를                      가 세운 나라가 망하자 제각기 무리를 이끌고
            물리칠 수 있었다. 사모 왕은 제왕의 분위기를                    흩어졌다. 큰아들과 둘째가 이끄는 집단은 러

            좋아했는지 슬라브인 부인을 12명이나 두었고                     시아 초원에 정착하였던 반면, 셋째 아들 아스

            그들로부터 22명의 아들과 15명의 딸을 낳았                    파루크가 이끄는 무리는 다뉴브 하구의 델타
            다고 한다.                                       지역에 정착하여 후일 중세 불가리아 왕국으

              아바르 제국으로부터 서쪽의 독일 지역 슬라                    로 발전하였다. 넷째 아들 쿠베르의 무리는 서
            브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독립하자 이번에는 동                     쪽으로 가서 다뉴브강을 건너 아바르제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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