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대한사랑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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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르의 슬라브족 지배                                 없다. 이 연대기에 의하면 아바르족은 다른 족

              헝가리 초원을 정복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속과 전쟁을 할 때에는 슬라브인들을 앞세워
            아바르는 비잔틴제국과 동맹조약을 체결하기                       싸우게 하였다. 슬라브인들이 이기면 자신들은

            는 하였지만, 비잔틴제국의 허수아비가 되지                      적들을 유유히 약탈하고 만일 슬라브족이 패

            는 않았다. 아바르는 훈족의 후예인 우티구르                     하면 다시 싸움에 나가도록 뒤에서 지원하는
            와 쿠트리구르를 정복하고 이들이 비잔틴제국                      역할을 하였다. 슬라브인들에게 더욱 굴욕적이

            으로부터 받던 공납 즉 군사적 지원금을 비잔                     었던 것은 매년 아바르인들이 슬라브족에게 와

            틴제국이 자신들에게 바치도록 요구하였다. 당                     서 겨울을 보내는데, 그때마다 슬라브족의 부
            시 비잔틴의 새로운 황제인 유스티누스 2세가                     인들과 딸들을 데리고 잤다는 것이다. 당시 슬

            이를 거부하자 아바르족과의 전쟁이 일어났다.                     라브인들은 아바르의 노예처럼 공납도 바치고

            아바르는 다뉴브 강변의 요충지인 시르미움을                      여자도 바쳐야 했던 것이다.
            공격하여 그곳을 장악하였다. 비잔틴 황제는                       슬라브족을 지배하게 된 아바르는 슬라브족

            시르미움을 아바르에게 넘겨주었을 뿐 아니라                      을 앞세워 예전의 동맹국 비잔틴제국을 공격
            매년 8천 개의 금화를 공납으로 지불하는 굴욕                    하였다. 6세기 말과 7세기 초에 걸쳐 비잔틴제

            적인 협정을 체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공납                   국은 군사적인 면에서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

            액은 10여 년 뒤인 585년에는 10만 개로 인상                 해 있었다. 사산조 페르시아제국뿐 아니라, 시
            되었다. 당시 비잔틴제국은 페르시아와의 오랜                     리아와 이집트로 세력을 뻗쳐오는 아랍의 이슬

            전쟁 때문에 발칸반도에 충분한 병력을 주둔시                     람 세력과도 맞서야 했다. 발칸반도를 지킬 비
            킬 수 없어 아바르의 요구를 거부하기 힘들었                     잔틴제국의 군사가 대거 동방으로 투입되었기

            다.                                           때문에 슬라브족을 앞세운 아바르 세력은 손

              얼마 후 아바르는 자신들에게 공납을 바치                     쉽게 비잔틴 영토로 진격할 수 있었다. 614년
            기를 거부하는 다뉴브 하류의 슬라브 족속을                      에는 달마티아 해안의 살로나 뿐 아니라 북부

            공격하여 굴복시켰는데, 이 공격 시 비잔틴제                     발칸의 나이수스, 세르디카 등의 주요 도시들

            국의 함선과 군사도로를 이용하였다고 한다.                      이 슬라브-아바르 세력에 함락되었다. 심지어
            이제 아바르는 슬라브족의 지배자가 되었는데,                     슬라브족은 통나무 배를 타고 그리스 남쪽의

            당시 슬라브족과 아바르족의 관계를 보여주는                      펠로폰네소스 반도까지 진출하여 약탈 행각을

            흥미로운 기록이 전해진다. 7세기경에 프랑크                     벌였다. 624년에는 비잔틴제국 수도인 콘스탄
            왕국에서 편찬된 《프레데가르 연대기》이다. 저                    티노플이 포위 공격을 받았다.

            자에 대해서는 이름 외에는 알려진 바가 거의                      이 시기 슬라브족은 단순한 약탈로 그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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