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6 - 대한사랑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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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성리학의 학맥이 안향-우탁-신현-이색, 정몽주, 원천석, 범장으로 이어졌다는 증거

            가 된다.



            (다) 야사: 말년에 야사(野史) 6권을 썼다고 전해지지만,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동락패

            송』에 따르면, 운곡은 야사 6권을 저술한 다음 궤 속에 넣어서 남에게 보이지 않고 가
            묘(家廟)에 감추어 두고 잘 지키도록 하라고 유언했으나, 증손자의 대에 이르러 사당에

            서 시사(時祀)를 지낸 뒤 의논하여 ‘시간도 많이 지났으니 이제 괜찮겠거니’ 하고 파서 내
            용을 확인했다고 한다. 허목(허미수)은 『기언』에서 조선왕조의 명에 대한 사대주의 역사

            관과 위배된 내용이 많아 자손들이 그 기록으로 집안이 멸족될 것을 우려해 소각하였

            다고 말하고 있다, 고우영 화백은 『오백년』에서 이 이야기를 소개하며 500년 뒤에 조
            선 왕조가 멸망한 뒤에야 발굴해야 했다고 탄식했다.



            운곡과 행촌, 목은, 나옹선사와의 인연

              운곡은 행촌 이암의 동생 도촌 이교의 문생으로 운곡을 과거시험에서 선발한 좌주(지

            공거)가 도촌이다. 도촌은 운곡을 이끌어 준 사람이고 운곡은 과거시험에서 도촌으로부
            터 합격받아 과거급제하였다. 행촌의 동생 도촌과는 시험감독관과 합격자와의 관계이

            다. 『운곡시사(행록)』에 나오는 시를 보면 “문수사에 놀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문수사

            는 행촌이 귀양가서 5년간 머물면서 『단군세기』를 구상했던 장소다. 운곡이 춘천 청평
            산 문수사에 가서 행촌을 만났다는 짐작이 가능하다.

              목은은 행촌의 아들인 이강의 절친한 친구이다. 목은은 행촌을 아버지같이 섬겼는

            데, 행촌이 돌아가셨을 때 그 비명을 목은이 썼다. 이런 목은에 대해서 운곡이 쓴 시가
            <이색을 만나러 원주 치악산에서 여주 신륵사로 가네>이다.

              운곡은 나옹선사(고려말 공민왕의 왕사 고승, 춘천 청평사와 천보산에서 공부함)와도 인연이 있
            었다. 그를 통해 불교경전인 『능엄경』, 『법화경』, 『금강경』 등을 애독하였는데, 나옹선

            사의 제자인 도경 각굉 등 많은 승려들과도 교유하였다.

              운곡은 『운곡시사』안에 삼교가 하나의 이치로 통한다는 삼교 교리를 남겼는데,(三敎
            一理幷序) 이들과의 인연으로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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