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 - 대한사랑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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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헝가리라는 국명에 대해서 많은 사람

            들이 궁금해한다. 일부 사람들은 헝가리를 로
            마제국 말기에 판노니아에 본영을 두었던 훈족

            과 연관시켜 ‘훈’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이런

            생각은 요즘뿐만 아니라, 중세 때부터 있었고,
            특히 마자르인들이 그런 믿음을 강하게 가졌

            던 것 같다. 아틸라 이야기는 동유럽의 유목민
            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는데, 마자르족은 자

            신들이 아틸라의 후예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

            겼다. 또한 아틸라가 지배하던 곳을 자신들이
                                                         에텔코즈 의 피의 맹세
            다시 정복하여 지배하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                     헝가리 케치케메트 시청 예식장에 있는 베르탈란 세케이의 프레스코화

            한 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전문가들의 생각은 좀 다르                     리’가 ‘훙가리’가 되어 갔다. 당시 프랑스어에서

            다. 헝가리 초기 역사 전문가인 로나타스 교수                    는 ‘h’ 발음이 사라지는 현상이 시작되었는데,

            에 따르면, 당시 슬라브어 문헌에서는 마자르                     이 때문에 기록하는 사람에 따라 ‘웅가리’에 원
            족을 ‘오노구르’ 혹은 ‘온구르’라고 하였다고                    래 ‘h’자가 있다고 생각하여 ‘훙가리’라고 ‘h’

            한다. 대불가리아 건국자 쿠브라트에서 보았                      자를 붙여 표기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마자

            듯이 오노구르는 10개의 오구르 부족을 뜻하                     르 왕국이 훙가리가 된 것이다.
            는 말이다. 7세기경 슬라브인들은 투르크 유목                     9세기 초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 대제는 서

            민과 비슷한 생활을 하던 흑해 북부의 다른 부                    로마 황제를 자처하기 시작한 최초의 프랑크

            족도 ‘오노구르’ 혹은 ‘온구르’라고 불렀다. 슬                  왕인데 헝가리 땅에 있던 아바르 제국을 정복
            라브인들이 쓰던 유목인들에 대한 이 포괄적인                     하여 그곳을 자신의 제국에 편입시켰다. 그런

            명칭은 서유럽에도 전해져서 서유럽에서는 마                      데 후대 중세 서유럽 사료들은 샤를마뉴가 ‘훙
            자르를 ‘웅가리’로 불렀다. 예를 들어 마자르인                   가리의 왕국을 정복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샤

            들의 판노니아 정복이 시작되기 전인 860년 동                   를마뉴 시대에는 마자르족이 아직 그 땅에 살

            프랑크 왕국의 루드비히 왕이 오스트리아의 한                     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는 엄밀히 말해서 시대
            수도원에 토지를 기증한 문서에는 마자르인들                      착오적인 기록이다. 당시 그 지역에 있던 왕국

            을 ‘웅가리’로 지칭하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은 훙가리 왕국이 아니라 아바르인들의 왕국이
            지나면서 서유럽의 기록들에서는 차츰 ‘웅가                      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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