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대한사랑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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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4년에 마자르족은 독일을 침공하였다. 당시                    죽기도 하였다. 이 전투에서 마자르족은 5천

            동프랑크 왕국에서는 여러 제후들이 국왕 오                      명의 희생자를 내었으며 세 명의 족장도 붙잡
            토 1세에게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 반란 세력                    혀 처형되었다.

            이 외세인 마자르족을 끌어들인 것이다. 마자                      이후 마자르족은 더 이상 서유럽을 공격하지

            르족은 동맹 제후들의 적들을 공격하고 약탈                      않았다. 대신 동쪽의 비잔틴 제국으로 공격의
            하였다. 심지어 라인강 너머 동프랑크 왕국과                     방향을 바꾸었는데, 959년에는 비잔틴 제국이

            는 무관한 벨기에와 프랑스 땅도 공격의 대상                     약속한 공납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침략을
            이 되었다. 도시들과 수도원이 약탈당했고, 부                    감행했다. 마자르족의 비잔틴 공격은 970년경

            르고뉴를 따라 남하한 마자르 부대는 프로방                      까지 계속되었으나 10세기 말 이후 유럽 국가

            스까지 진출하였다. 당시 프로방스의 해안 지                     들에 대한 약탈을 그만두고 점차 유럽인들 사
            역은 이슬람 세력이 점령하고 있었는데, 이곳                     이에 동화되어 갔다.

            에서 마자르족은 이슬람 세력과 싸웠다.                         정복 시기에 마자르인들에게는 아직 국가라
              다음 해인 955년 여름 재차 독일을 침공하                   고 할 만한 조직은 없었다. 물론 마자르 부족

            였다. 마자르족은 바이에른과 그 북쪽에 있는                     연합 전체를 대표하는 지도자는 있었다. 비잔

            프랑코니아(프랑켄) 지방을 공격하고 8월에는                     틴 제국의 콘스탄티노스 7세 황제에 의하면,
            슈바벤 지방의 중심도시 아우크스부르크를 공                      최초의 마자르족 우두머리는 아르파드였다. 헝

            격하였지만, 함락시키지는 못했다. 8월 10일                    가리인들은 아르파드를 건국 시조로 여기는

            아우크스부르크 남쪽 레흐 강변에서 마자르족                      데, 이 아르파드 가문은 그 이후로도 전체 부족
            과 오토 1세의 독일 군대 사이에 결전이 벌어                    연합의 지도자 자리를 대대로 이어갔다. 아르

            졌다. 오토 1세는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파드 후손들로부터 자연스럽게 헝가리의 왕권

            가까운 거리에서 싸우는 근접전으로 마자르 기                     이 형성되어 갔다. 드디어 서기 1000년 아르파
            병대를 물리치는 데 성공하였다. 말을 타고 활                    드의 후손이 기독교를 받아들여 로마 교황으

            을 쏘며 빠르게 움직이는 마자르족은 자신들                      로부터 ‘왕’이라는 칭호와 왕관을 받았다. 그의
            의 장기인 치고 달아나는 식의 전술을 마음대                     세례명은 ‘스테파노’인데 헝가리어로는 ‘이스

            로 구사할 수 없었다.                                 트반’이라고 한다. 이스트반 왕은 죽은 후에는

              이 ‘레흐펠트 전투’에서 마자르족은 많은 병                   가톨릭 교회의 성인으로 추존되었다. 그의 축
            사를 잃고 흩어져 달아났다. 말이 지쳐서 더 도                   일인 8월 20일은 헝가리의 건국기념일이 되었

            망갈 수 없었던 병사들은 인근의 마을에 숨었                     을 정도로 이스트반 왕은 헝가리인들에게 존경
            다가 불에 타 죽기도 하고 주민들에게 잡혀서                     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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