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대한사랑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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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듯이 원래는 우랄산맥 동쪽에서 살던                     갈라져 나온 사람들이라는 사실 때문인 것으

            수렵민족이었다. 이들은 차츰 유목민의 생활                      로 보인다.
            방식을 받아들여 유목민화 되어 갔다. 그들에                      콘스탄티노스 황제에 의하면, 마자르족은 페

            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은 투르크 유                    체네그족의 공격으로 인해 살던 곳에서 쫓겨

            목민들이었는데, 이는 목축과 관련된 헝가리어                     났다. 그들은 두 갈래로 나뉘어, 한 무리는 카
            단어들이 투르크어로부터 왔다는 것에서 확인                      프카스 산맥을 넘어 페르시아쪽으로 이동하였

            할 수 있다. 마자르인들은 우랄산맥 삼림지대                     고, 다른 한 무리는 서쪽으로 도망쳐 “에텔쿠
            로부터 남하하여 카프카스 산맥 북쪽의 초원                      즈” 지역에 정착하였다. 동쪽으로 간 사람들을

            지대로 이동하였다. 당시 이 지역은 서투르크                     《제국통치론》에서는 그리스어로 ‘사바르토이

            계의 카자르 제국이 지배하고 있었다. 마자르                     아스팔로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마자르족이
            인들은 카자르 제국의 북쪽 국경을 지키는 번                     라기보다는 투르크 계통의 사비르족이었던 것

            병의 역할을 맡았다.                                  같다. ‘에텔쿠즈’는 《제국통치론》에 따르면, 두
              판노니아를 정복하기 이전 마자르족의 초기                     강, ‘에텔’과 ‘쿠즈’에서 이름을 딴 곳으로, 흑

            역사에 대해서는 비잔틴 제국의 유명한 학자                      해 북안 드네프르 강 서쪽의 우크라이나 지역

            이자 황제였던 콘스탄티노스 7세가 쓴 《제국                     에 해당한다.
            통치론》(De administrando imperio)에 비교적 자세        당시 마자르족은 7개의 부족으로 이루어져

            히 나와 있다. 10세기 중반에 나온 이 책은 황                  있었다. 마자르족 전체를 통솔하는 왕은 없었

            제가 자신의 아들이 황제가 되었을 때를 대비                     으며 대신 부족마다 전쟁을 이끄는 지휘관이
            하여 제국 주변의 여러 민족과 어떻게 관계를                     있었다. 콘스탄티노스 황제는 이러한 전쟁지

            맺고, 다뤄야 할지를 정리한 지침서이다. 페체                    휘관을 ‘보이보데’(voivode)라 부르고 있는데, 이

            네그, 카자르, 마자르 등 비잔틴 제국과 접한                    칭호는 슬라브족들의 우두머리를 지칭하는 말
            다양한 종족들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담고 있                     에서 온 것이다. 마자르인들은 판노니아를 정

            어 이 책은 중요한 역사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복하기 이전에 이미 그 지역을 잘 알고 있었
            그런데 이 책에서는 마자르족에 대해 ‘마자르’                    다. 860년대에는 프랑크인들과 대립하고 있던

            나 ‘헝가리인’이라고 하지 않고 ‘투르크인’이라                   모라비아 대공이 마자르족을 지원군으로 불

            고 부르고 있다. 콘스탄티노스 황제만 그렇게                     러 들여 마자르족이 비엔나 근처까지 진출하여
            쓴 것이 아니고 당시 비잔틴 제국 사람들은 모                    싸운 적도 있었다. 마자르족의 원정이 시작된

            두 마자르족을 투르크인이라 불렀는데, 이는                      894년에도 모라비아 대공은 프랑크-불가리아
            마자르족이 투르크족이 세운 카자르 제국에서                      동맹에 대항하기 위해 마자르족을 불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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