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대한사랑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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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원정 경험을 통해 마자르족은 당시 카 패배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러한 원정 가운
르파티아 분지 즉 판노니아를 둘러싼 여러 세 데 가장 먼 곳까지 간 것은 942년의 스페인 원
력들의 복잡한 관계와 그곳의 사정을 훤히 알 정이었다. 그 거리는 거의 2천 Km에 달하여,
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여러 세력들 451년 훈족의 갈리아 원정 거리보다 더 멀었
간의 다툼을 이용하여 그 지역을 정복하기 위 다. 당시 스페인은 북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이
한 원정에 착수하였다. 슬람 세력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마자르족의
마자르족의 헝가리 원정은 다뉴브강을 따라 이 원정에 대한 기록은 유럽측 사료에는 없고
서 서쪽으로 이동하지 않고, 그보다 훨씬 북쪽 오로지 ‘이븐 하얀’(987-1075)이란 이슬람 역사
에 위치한 카르파티아 산맥의 고개를 넘어가는 학자가 남긴 사서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길을 택했다. 이 고개가 바로 ‘베레크 고개’인 그의 기록을 통해 당시 마자르 기병대가 어
데, 오늘날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슬로바키아 떤 경로로 이동했는지를 알 수 있다. 마자르인
국경이 만나는 곳이다. 들은 예전의 훈족처럼 헝가리에서 독일을 거
마자르족의 판노니아 원정은 902년까지 계 쳐 프랑스로 가는 길 대신 알프스를 넘어 이탈
속되었다. 판노니아를 차지한 뒤에는 옆에 있 리아 반도로 들어가 거기서 남프랑스로 넘어
던 모라비아 공국을 공격하여 마침내 그곳까지 갔다. 하지만 마자르족은 코르도바 왕국의 심
정복하였다.(906년) 이후 마자르족의 원정은 정 장부인 안달루시아 지방까지는 가보지도 못하
복보다 약탈이 주된 목적이 되었다. 서쪽의 독 고 피레네 산맥 근처에 이르렀다. 초원과는 전
일과 이탈리아 북부, 심지어 프랑스까지 약탈 혀 딴판인 곳이라 말에게 먹일 꼴과 식량, 물
원정의 대상이 되었는데, 프랑스의 저명한 중 이 부족하여 며칠 만에 퇴각하였는데, 갑자기
세 사가인 마르크 블로크에 따르면 당시 주변 나타났다가 바람처럼 사라진 마자르족의 일부
지역 연대기에는 거의 매년 빠짐없이 ‘헝가리인 병사들이 잡히지 않았더라면 이들이 어디서 온
들의 약탈’에 대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924년 사람들이었던지 당시 스페인을 지배하던 무슬
에는 남프랑스의 ‘님’이란 도시를 공격하기 위 림들은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포로로 잡
해 이탈리아 북부에서 알프스 산맥을 넘기도 힌 다섯 명의 마자르 병사를 심문하자 마자르
하였다. 또 시메온 칸이 죽어 불가리아가 약해 족이 어디에서 왔고, 누가 그들을 다스리는지
진 927년에는 비잔틴 제국의 트라키아 지방까 알게 되었다. 하얀에 의하면, 이 다섯 포로는
지 멀리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모두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칼리프의 호위병이
마자르족의 서유럽 원정은 955년 오토 1 되었다고 한다.
세의 동프랑크 왕국 군대에 의해 마자르족이 그 이후에도 마자르인들의 공격은 계속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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