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대한사랑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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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는 침상에서 죽는 법이 없다                           을 받고 암살되었다. 당시 몽양의 옆에 있던 고

              1947년 1월 우파 세력의 반탁운동과 좌파                   경흠은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
            세력의 편협성을 비판하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은 “조국….” 그리고 “조선….”이었으며, 미소를

            김규식·김창숙과 함께 통일적 임시정부 수립의                     띤 얼굴로 죽었다.’고 한다. 그의 나이 향년 62

            필요성을 역설하며 민족 통일전선운동을 펼치                      세였다.
            는 등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좌                    그의 죽음으로 좌우합작위원회는 구심점을

            파 단체의 주도권을 놓고 박헌영 등과 경합했                     잃게 되었고, 극좌‧극우 양극단 세력의 갈등

            다. 이를 반대하는 좌·우익 양측으로부터 십여                    이 표출되었다. 끝내 ‘통일 임시정부’ 수립을
            차례 테러를 당하였다.                                 위한 좌우합작운동은 좌절되었고, 한반도는

              이런 테러를 당하면서도 그는 ‘혁명가는 침                    ‘남한 내 단독정부 수립안’으로 현재까지 이르
            상에서 죽는 법이 없다. 나는 거리에서 죽을 것                   고 있다.

            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끝내 1947년 7월 1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서울 종로구 혜화동 로터리에서 차량으로 이동                     과 역도선수 김성집 등 체육인들이 그의 관을
            도중, 백의사(白衣社, 반공단체)의 집행부장 김영철                 운구하였고, 묘소는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 솔

            이 선정한 한지근(본명 이필형)외 다섯 명의 저격                  밭공원 근처에 있다. 사후 2005년 대한민국 정



































                       몽양 여운형 선생 묘소 앞 안내문   강북구 수유동 솔밭공원 옆에 있는 몽양 여운형 선생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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