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 - 대한사랑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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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무렌강은 요하의 상류다. 해 원정에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세상을 떠
수나라와 당나라 시대를 거쳐 10세기 초까 나자, 제위 계승에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결국
지 거란은 세력이 미미한 변방의 부족이었다. 야율배는 동생 야율요골에게 황제의 자리를 빼
당나라 초기에 당은 이 지역에 송막도독부를 앗기고 투르크계 사타족이 세운 후당(後唐)으로
설치하여 거란족을 통치하였다. 오대십국시대 도망쳤다.
(五代十國時代, 907~979)에 접어 들면서 당이 혼란 야율요골은 야율덕광으로도 불리는데, 묘호
에 빠지자, 질랄부의 수령인 야율아보기가 거 는 태종(재위 927-947)이다. 태종은 형과는 달리
란의 8개 부족을 통일하여 거란의 우두머리인 사냥을 좋아하고 전투에 능한 인물이었다. 당
가한(可汗)이 되었다. 주변의 해, 실위, 조복 등 시 후당의 하동절도사 석경당(石敬瑭)이 후당 황
의 유목민 부족도 곧 정복하였다. 그러자 916 제의 인사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킬 생각
년 야율아보기는 스스로 황제를 칭하였다. 본 으로 거란에 도움을 요청하자, 태종은 5만 기
래 거란의 8부족은 3년마다 연맹의 대표인 가 병을 이끌고 중원으로 쳐들어가 후당을 멸망시
한을 선출해왔으나, 야율아보기는 이런 체계를 키고 후진(後晉, 936-946)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바꾸어 나머지 부족들을 질랄부에 복속시키고 태종은 사타족 출신의 무장인 석경당을 그 왕
자신을 황제로 칭함으로써 거란부족 연맹을 세 에 앉히고 대가로 ‘연운십육주(燕雲十六州)’를 할
습군주제 국가로 만들었다. 태조 왕건이 고려 양받았다. 연운십육주는 오늘날 텐진으로부터
를 세우기 2년 전의 일이었다. 다퉁에 이르는 지역으로 하북성과 산서성을 일
야율아보기는 북방 몽골 초원의 부족들을 부 포함한다. 옛 연나라 땅과 운중현 지역에 위
지배하에 넣고 거란국을 선포한 직후, 당시 만 치한 곳이라 그렇게 불렸다. 이후 태종은 국호
주 일대에 큰 세력을 펼치고 있던 대진국 즉 발 를 거란에서 중국식 국명인 ‘대요(大遼)’로 바꾸
해 원정에 나섰다. 발해 원정은 짧고 빠르게 끝 었다. 거란의 본거지가 요하 근처에 있다는 데
났다. 925년 12월 거란군은 발해를 기습 공격 서 유래한 이름이다.
하여 한 달만에 발해의 수도 홀한성을 함락하 960년에 건국된 송나라는 979년, 거란과 송
였다. 야율아보기는 정복한 발해 땅에 동단국 사이에 완충 역할을 하던 산서성 지역의 북한
(東丹國)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태자인 야율돌육 (北漢)을 정복하였다. 그리고 연운십육주를 수
에게 인황왕(人皇王)이라는 칭호를 주어 그 왕으 복하기 위한 공격에 나섰으나 거란군에 패배
로 앉혔다. 야율돌육은 중국사서에서는 야율 하였다. 송이 연운십육주 회복에 대한 꿈을 버
배(耶律倍)로 나오는데 성품이 부드럽고 독서를 리지 못하자, 1004년 요나라의 성종은 20만의
좋아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야율아보기가 발 군대를 동원하여 ‘남벌(南伐)’ 즉 송나라 원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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