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대한사랑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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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라 강역 ©위키백과, 오른쪽 고려와의 국경은 왜곡되어 있다.
나섰다. 송나라는 중원에 요나라 군대가 들어 한편, 거란의 서쪽에는 서하(西夏)가 있었다.
오자 싸우는 것을 멈추고 협상을 제안하였다. 오늘날의 칭하이성과 간쑤성 그리고 싼시성(섬
그리하여 체결된 협약이 중국사에서 유명한 서성) 일대에 걸쳐 있었던 나라로 티베트계의 탕
‘전연(澶淵)의 맹약’이다. 전연은 황하 북변의 도 구트(黨項)족이 세운 나라였다. 서하의 뿌리는
시로 오늘날 허난성 푸양시에 위치한다. 이 조 당나라 말기의 탁발사공(拓拔思恭)이라는 인물
약에서 송나라는 요나라에 군비지출을 돕는다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탁발’이라는 성을
는 명분으로 매년 비단 20만 필과 은 10만 냥 사용하면서 자신이 선비족이라고 주장했지만,
을 보내기로 약속하였다. 사실상 조공이었다. 실제로는 티베트계 출신으로서 명망이 높은 탁
또한 황하를 경계로 삼고 송과 요는 형제관계 발씨를 자칭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황소의 난
를 맺는다고 하였다. 당시 송의 진종(眞宗)이 요 을 평정한 공로로 당 왕실의 성인 이씨를 하사
의 태종보다 나이가 많아 형이라 하였지만, 이 받고 하국공(夏國公)에 봉해졌다. 오대십국시대
는 송이 거란보다 우위에 있다는 의미는 아니 에 들어와 그의 자손들이 스스로 왕을 칭하였
었다. 그러나 전연의 맹약 이후 거란은 더 이상 는데, 역사에서는 이 나라를 ‘서쪽에 있는 하나
송의 영토를 넘보지 않았다. 라’라는 뜻으로 ‘서하(西夏)’로 부른다. 그 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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