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 - 대한사랑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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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9
부는 건국훈장 대통령장, 2008년 다시 건국훈 상실하였다고 본다. 곧 민족 전체의 손실이다.
장 대한민국장(훈 1등)을 추서했다. 독립운동가 -여운형 서거 담화, 1947년 7월 22일
겸 정치인 여운홍의 친형이고, 철학자 박찬기 군정청은 처음에 한민당 세력들로부터 ‘여운
의 외삼촌이다. 형은 친일파이며, 공산주의자.’라는 소리를 듣
고 여운형을 의심했으나, 나중에 가면서 그러
그에 대한 평가 한 오해가 풀리게 되어 여운형의 중도파 정치
잘 생기고 명연설가에 똑똑한 그에 대해서는 노선에 호감 가게 되었다고 한다.
우호적인 평가가 많다.
미 국무성은 여운형을 당시 해방 이후 조선에서
우리는 한 위대한 혁명 투사를 잃었을 뿐만 아니 인기 있고 유능한 지도자로 봤다. 그는 권력을 추
라, 유일 목표인 신국가 건설을 위하여 전 민족이 구하지 않고, 국민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중략)
합작으로부터 완전 통일에 나아감으로 최후 목 그가 공산주의자라는 생각은, 틀린 생각이다. 그
적을 달하기를 제창하여 이에 최종까지 노력하던 는 최대한 공산주의를 이용했을 뿐이며, 그는 민
지도자를 상실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몽양 동지 중 정치기구 결성을 도왔지만, 그는 결코 공산주
의 영별에 대하여 정실상의 감촉보다도 우리 민 의자가 아니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는 공산주의
족의 자유를 획득하려는 공동진영의 한 용장을 이론을 신봉하지 않았고, 소련 편이 아니었다. 그
는 언제나 한국 편이었다.
-미군정 관리 리처드 로빈슨
몽양은 개인적으로 소련보다 미국에 더 가까웠지
만, 이들 양국에 대해 절대 중립이었으며, 그가 갖
고 있던 유일한 목적은 미국, 소련 양국으로 하여
금 가급적 빨리 한국으로부터 물러나게 하는 일
이었다. -주한 미군 총영사 윌리엄 랭던
남동생 여운홍에 의하면 남들에게 후한 사
람이었고, 윤보선은 그가 세련된 인물이고 활
기찬 사람이며 웅변에 능하고 겸손하며 사교적
몽양 여운형 평전 이었다고 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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