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대한사랑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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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유족민족사(9)
매 사냥을 하는 거란족 ©위키백과
동아시아의 패자 거란제국
글. 김현일(상생문화연구소 연구실장)
거란제국의 흥기
11세기 중반 거란제국은 전성기를 맞이하였 해(奚), 남쪽으로는 중국의 영주(營州), 북쪽으로
다. 이 시기 편찬된 중국 사서 《신당서》 <북적 는 말갈과 실위에 맞닿아 있었다. 거란이라는
전(北狄傳)>에 의하면 거란은 선비족에서 갈라져 이름이 처음 등장한 중국 사서 《위서(魏書)》에
나왔고, 그들의 생활방식은 돌궐과 비슷했다 따르면, 4세기 말 북위의 도무제 탁발규가 군
고 한다. 삼국시대 말, 선비족의 우두머리 가비 대를 보내 거란족을 토벌한 후, 이들은 북위에
능이 조조의 위나라에 살해된 후 거란족은 시 공납을 바치고 예속되었다. 당시 거란족이 살
라무렌강 남쪽으로 도망쳤다. 이들은 후일 북 던 지역을 중국인들은 ‘송막’이라고 불렀는데,
위 시대(386-534)에 와서 ‘거란(契丹)’이라고 불리 소나무 숲과 사막이 있던 지역으로 사막이라기
기 시작했다. 거란은 ‘키탄’을 표기한 것이다. 보다는 풀들이 자라는 초원이 있었다. 주변에
당시 거란은 동쪽으로는 고구려, 서쪽으로는 는 ‘황수(潢水)’라 불린 시라무렌강이 있었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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