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 - 대한사랑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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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점 때문에 그들은 별다른 근거도 에는 ‘진짜 말갈’이 있었다.
없이 한강 이북에 있는 임진강을 낙랑군과의
경계인 ‘패수(浿水)’라 하였고, 예성강을 대방군 비류와 온조가 올랐던 부아악
과의 경계인 ‘대수(帶水)’라고 하였다. 패수와 대 ‘백제 건국지 위례성은 어디였을까?’라는 의
수는 온조와 비류가 건넜던 강으로 위례성과 문을 풀기 위해, 백제 건국지와 관련된 약 20
미추홀이 있던 곳이기 때문에 고대 지명을 멋 여 권의 서적과 150여 편 이상의 논문을 살펴
대로 갖다 붙인 것이다. 보고 정리하였다. 하지만, 실마리를 찾을 수 없
었다. 그러다가 『대동지지』에서 특이한(?) 기록
(고구려 추모) ‘대왕께서 돌아가시자, 나라가 유 이 눈에 띄었다.
류(유리)에게 돌아가게 되었으니 우리가 공연히
여기에 있으면서 쓸모없는 사람같이 답답하고 우 「백제본기」에 따르면, 졸본에서 남하한 비류
울하게 지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어머니를 모시 와 온조 일행은 도읍을 정하기 위해 한산 ‘부
고 남쪽으로 가서 살만한 곳을 택하여 따로 나라 아악(負兒岳)’에 올라가서 주변 지세를 살펴보았
의 도읍을 세우는 것이 낫겠다.’라고 하고, 마침내 다. 부아악은 정약용의 설에 따라 서울 강북의
그의 동생과 함께 무리를 거느리고 패수(浿水)와 삼각산(북한산)에 비정되고 있는데, 『대동지지』
대수(帶水)를 건너 미추홀에 와서 살았다. 에는 부아악의 다른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다.
-『삼국사기』「백제본기」<시조 온조왕> 바로, ‘횡악(橫嶽)’과 ‘화산(華山)’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위례성을 서 삼각산: 한성부 북쪽 15리에 있다. 백제는 부아
울 지역에 비정하다 보니 위례성 동쪽의 ‘낙랑’ 악(負兒嶽)이라고 하였는데, 횡악(橫嶽)이라 하기도
과 북쪽의 ‘말갈’을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결 하고, 화산(華山)이라고 하기도 한다. -『대동지지志』
국, 정약용은 낙랑은 춘천의 맥국(낙랑국)이며,
말갈은 한반도 중부지역까지 내려올 수 없었 ‘부아악’은 한반도에 두 군데 더 있었다. 평
으니 ‘가짜 말갈[僞靺鞨]’이라고 주장하였다. 주 안남도 맹산읍에 ‘삼각산’과 ‘부아암’이 있었고
류학계도 낙랑과 말갈은 한강 유역의 정치체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에 ‘부아악’이 있었다. 주
를 바꿔 쓴 것이라 주장하였다. 그러나, 「백제 목할 것은 부아악의 다른 이름인 ‘횡악(橫嶽)’,
본기」에는 ‘낙랑태수’라는 표현이 있어서 진짜 ‘화산(華山)’과 흡사한 ‘횡산(橫山)’과 ‘화표산(華表
‘낙랑군’이 맞고, 말갈은 고구려 졸본 땅에 가 山)’이란 지명이 지금의 요동 지역에 있었다는
까웠기 때문에 ‘졸본에서 남하’한 위례성 북쪽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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