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 - 대한사랑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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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0
하였다. -『삼국사기』「고구려본기」<제2 대무신왕> 의 심양과 요양 일대에 있던 것으로 이 지역에
서 서쪽으로 흐르면서 과거 ‘패수’로 불렸던 것
[대무신왕 27년(44)] 가을 9월에 한나라의 광무제 은 태자하 밖에는 없다.
가 병력을 보내 바다를 건너 낙랑을 치고, 그 땅
을 빼앗아 군현으로 삼으니, 살수(薩水) 이남이 한 ③패수 남안
(漢)에 속하게 되었다. 졸본에서 남하하여 ‘패수’를 건넜다는 말은
-『삼국사기』「고구려본기」<제2 대무신왕> ‘고구려에서 낙랑 땅으로 들어갔다’는 뜻이 되
어서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여기에는 지금
낙랑국과 낙랑이 위치한 살수(薩水)는 복기 까지 밝혀지지 않은 백제와 낙랑의 관계가 숨
대·남의현·허우범 교수의 연구 결과를 봤을 때, 겨져 있다. 백제 도성에 한성(漢城), 한산(漢山),
지금의 무순에서 심양을 거쳐 요양 서쪽으로 한수(漢水) 등 한(漢)과 친연성 있는 이름들로 불
흐르는 혼하(渾河)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리는 이유도 유추할 수 있다.
면 ‘최씨 낙랑국’과 ‘살수 이남의 낙랑’은 지금 간략하면 위례성 초기에는 마치 낙랑에 예속
된 것처럼 보이는 기록들이 나타난다. 이후 낙
랑과의 관계를 단절하면서 위례성은 ‘말갈과
낙랑의 잦은 공격’에 시달리고, 그 과정에서 위
례성의 실제 군주였던 소서노 어라하가 홍서하
는 변고가 발생하게 된다. 결국 소서노의 뒤를
이은 온조왕은 마한 땅의 하남 위례성으로 나
라를 옮기게[遷國] 된다.
우리나라의 동쪽에는 낙랑(樂浪)이 있고, 북쪽에는
말갈(靺鞨)이 있어 번갈아 우리 강역을 침공하므
로 편안한 날이 적다. 하물며 요사이 요망한 징조
가 자주 나타나고, 국모(國母)께서 돌아가셨다. 형
세가 스스로 편안하지가 않으니, 장차 반드시 나
라를 옮겨야겠다.
-『삼국사기』「백제본기」<시조 온조왕>
졸본→말갈→패수(태자하)→위례성·낙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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