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 - 대한사랑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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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는 초기에는 하북성과 지금의 산서성 일 북위의 수만 기병이 황해를 건널 수도 없고,
대를 차지하다가, 후에는 허난성까지 세력을 고구려를 통과할 수도 없다. 말 탄 기병 수십만
넓힌 강국이 되었다. 즉, 바다와는 크게 접하 명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백제를 공격했다는
지 않은 내륙 국가였던 것이다. 그런데도 사료 것은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다. 결국 북위의 기
에는 수십만의 기병을 이끌고 백제를 공격했다 병 수십만 명과 전쟁을 벌인 백제는 한반도의
고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무리 항해술 백제가 아니라, 대륙에 존재했던 ‘대륙백제’였
이 발전했다 하더라도, 기병(騎兵) 수십만을 배 음을 짐작하고 추정할 수 있다
에 태워 이동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다시 『자치통감』으로 돌아가 보자.
북위의 기병 중심 군대가 배를 타고 충청도까
지 와서 백제와 싸웠다는 주장은 애초에 성립 북위가 병력을 보내어 백제를 공격하였으나 백제
할 수 없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 에게 패했다. 백제는 진나라 때부터 요서와 진평
사관의 태두 이병도 교수는 어이없게도 “배를 2군을 차지하고 있었다.(永明六年, 魏遣兵擊百濟. 晉
타고 충청도까지 와 싸웠다”는 식으로 주석을 世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也)
달아놓았다. - 『자치통감』<세조 상지하 영명 6년(4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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