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 - 대한사랑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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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가 설치된 바 있었다.                              문자제 재위 시에 요서, 진평의 백제군 지역이

              그렇다면 동성왕 때 북위와의 전쟁에서 ‘승                    고구려의 지배하에 들어갔다는 기록도 함께 나
            리하여 지켜낸 해당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위                    와 있다. 이 해가 502년이다. 동성왕이 시해된

            덕왕이 북제로부터 승인받은 것으로 이해하는                      다음 해로 백제로서는 어수선하고 약화된 시기

            것도 합리적 추정일 것이다.                              를 틈타서 고구려가 요서, 진평의 백제땅을 없
                                                         애버린 것이다.

            동성왕의 시해와 요서, 진평 백제의 멸망
                                                          이상과 같이 백제-북위 전쟁 기록에 대해 살

              요서 땅에 백제의 영지가 있었는데 곧 요서, 진평                펴보았다. 결론을 다시 정리하자면, 고구려 하

              이고 강남에는 월주가 있었으니 여기에 소속된                   면 수·당 전쟁이 떠오르듯이, 백제에게는 북위
              현은 첫째 산음, 둘째 산월, 셋째 좌월이다. (고               와의 승전 기록이 존재한다. 그러나 조상들이

              구려 21세 문자제) 명치 11년(501년) 11월에 이            나라의 영토를 지켜낸 이 자랑스러운 역사가

              르러 월주를 쳐서 취하고 군현의 이름을 바꾸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송강, 회계, 오성, 좌월, 산월, 천주라 하였다. 명             안타까운 일이다. 중국의 정사에 수없이 기록

              치 12(단기 2835, 502)년에 신라 백성을 천주로 옮          된 대륙 백제의 흔적과, 우리의 정사인 『삼국사
              겨 그곳을 채웠다. 이 해에 백제가 조공을 바치지                기』에 남아 있는 기록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아니하므로 군대를 보내어 요서, 진평 등의 군을                  이제는 일제 식민사관의 틀에서 벗어나 백제

              쳐서 빼앗으니 백제군이 없어지고 말았다.                     의 온전한 역사를 되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환단고기·태백일사』「고구려국본기」                       서는 역사학계가 사실 그대로의 역사를 받아들

                                                         여야 한다. 동성왕의 북위 전쟁 기록부터 바로

              『환단고기』에는 백제 땅이 요서, 진평 등에                   잡아야 할 것이다.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고구려 2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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