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 - 대한사랑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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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0
뒷 문장까지 보니 요서와 진평 2군의 백제가 다고 말한다. 즉, 남중국과 북중국이 서로 견제
분명해졌다. 이처럼 대륙백제가 존재했다면 북 하는 과정에서, 남중국이 백제의 북중국 점령
위 기마부대와의 전쟁도 충분히 가능하다. 『자 을 자기네 역사서에 의도적으로 남겼다고 믿는
치통감』에 기록된 “백제가 진나라 때부터 요서 것이다.
와 진평 2군을 차지했다”는 내용을 통해, 기병 그러나 『송서』를 제외한 『양서』와 『남사』는
중심의 북위와 전쟁 기록이 비로소 이해되기 북중국이 중국 전역을 통일한 뒤에 편찬된 책
시작하는 것이다. 이다. 특히 『양서』와 『남사』는 북중국을 계승
한 당나라 시기에 편찬된 것으로, 사실상 북중
백제의 대륙경영, 대륙백제 즉 요서, 진평군 국이 편찬한 역사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남중
에 관한 기록은 『자치통감』에만 있는 것이 아 국이 북중국을 조롱할 목적으로 이러한 사실
니다. 놀랍게도 중국의 『송서(宋書)』, 『양서(梁 을 기록했다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 이러한
書)』, 『남제서(南齊書)』, 『북제서(北齊書)』, 『남사(南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백제가 요서 땅을 점령
史)』, 『북사(北史)』,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 했다는 기록을 부정하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
書)』, 「양직공도(梁職貢圖)」, 『통전(通典)』, 『흠정만 은 타당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 등에 백제가 중국의 동 동성왕은 북위와의 이 전투에서 공로를 세
부지방을 다스린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운 장군들을 광양태수, 청하태수, 광릉태수, 성
이처럼 수많은 문헌에서 백제의 대륙 경영을 양태수로 봉했다. 모두 현 중국의 지명이다. 그
언급하고 있음에도, 현재의 국사 교과서에서는 지역이 하북성, 산동성, 강소성 일대이다
마치 그런 일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삭제되어
있다. 참으로 기막힌 역사학계가 아닐 수 없다. 무평 2년 봄 정월 백제왕 여창(餘昌)을 사지절도독
어떻게 중국의 정사와 한국의 정사에 일치되게 동청주자사(使持節都督東靑州刺史)로 삼았다.
기록된 수많은 사료들을 모조리 무시할 수 있 - 『남제서』「동남이열전 백제」
는 것인가? 과연 그 역사 권력은 누가 쥐어준
것인가? 6세기 중후반에 북위의 후신으로 화북 동쪽
한국의 일부 학자들은 “남중국 역사서에 기 지역을 통치한 북제(北齊;(550∼577)가 백제의 위
록된 백제의 북중국 점령은, 남중국이 북중국 덕왕(威德王)에게 ‘동청주자사’라는 직함을 내렸
을 폄하할 목적으로 거짓으로 꾸며낸 역사”라 다. 청주는 산동반도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이
고 주장한다. 이들은 북중국의 역사서에 해당 었고, 실제로 유송(劉宋, 420∼479)의 명제(明帝)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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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 기록되어 있지 않으므로 신뢰할 수 없 시(泰始) 연간에는 산동반도 동남부 지역에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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