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 - 대한사랑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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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0
다르다. 그 조성 시기부터가 그동안 고고학적으로 밝힌 4세기의 고분이라는 주장에서
1~2백년이 후퇴한 5세기 말이나 6세기의 고분으로 주장되고 안내 간판도 수정되고 있
다. 이러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일단 이와 관련된 국내 학자들이 일본 유학파들이 많고
그 후학들이 많이 길러진 상황으로 일본에서 연구를 그대로 이어받아 주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과거 강인구 교수의 연구를 계승하여 한반도 기원설은 주장하
는 이를 찾아보기 어렵고 최근에는 한일 사학계가 공히 고대 왜인의 무덤으로 주장하
며 고대 일본의 영향력이 한반도 남부에 미쳤음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여기에 맞
추어 전라지역의 고분을 발굴하면 발굴 기사에서 빠지지 않는 내용이 ‘왜계 유물이 출
토되었다’라는 것이 양념거리처럼 등장하고 있는데, 그 영향은 가야사에도 그대로 미치
고 있다. 과거 가야의 유물이라고 주장된 지산동 고분의 차양식 철모나 대성동 고분의
파형동기 등 여러 기물들이 일본에서 많이 출토된다는 것을 근거로 모두 ‘왜계’ 유물로
출신성분이 바뀌었다.
(좌)5세기 일본 고분중기시대의 전방후원분포와 대형고분
ⓒナビゲーター日本史B 1 原子・古代~南北朝(山川出
版 曾田康範 編著)
(우)가야 지산동 고분에서 출토된 차양식 철모. 국내 학계
에서는 초기에는 가야의 철모로 소개하였는데, 일본의 닌
토쿠 왕릉 뿐만 아니라 주요 전방후원분에서 이러한 철모
가 계속 발굴됨에 따라 다수 출토 논리로 가야 철모에서
고분 시대 중기의 대형 전방후원분의 분포 ‘왜계’ 철모로 출신성분을 바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