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대한사랑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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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전남 영광의 전방후원분. 중형
급으로 잡목이 자리 잡고 있다.
(우)전남 영광의 소형 전방후원분
그런데 직접 현장답사를 통해 알게 된 진실은 그러한 예는 규모가 있는 일부 고분에만
적용되는 것이지 전부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가 눈으로 확인한 전방후원분
은 큰 규모도 있었지만, 아주 작은 애기(?)급 형태도 있었다. 북큐슈 고분 이전의 형태인
것이다. 그런데도 국내 사학계는 도매급으로 모두 5세기 말, 6세기의 고분이라고 주장
하며 왜인의 무덤이라고 설정하였다. 현장을 다니지 않고, 확인도 하지 않은 책상머리
학자들의 습성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이다.
위의 사진에서 보듯, 중형급 고분 아래 봉분 높이가 1m도 안 되는 전방후원분도 있
다. 구주의 전방후원분처럼 석실을 조성할 수 없는 규모이다. 이런 구조는 5~6세기 전
방후원분 구조와 관계가 없다. 뒤에 살펴 볼 대마도의 사례와 같이 석관묘 형태로 추정
할 수 있다.
미지의 백제 이전 세력들
필자가 국내의 전방후원분을 모두 눈으로 확인하고 일본 구주까지 날아가 초기 전
방후원분을 대조해서 살펴 본 결과는 아직까지 학계에서 규명하지 못한 역사적 사실과
연결되어 있다. 백제가 영산강 영역을 차지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초기 전방후원분을
만든 세력의 실체를 마한으로 운운하지만 정작 마한에 관한 역사는 규명하지 못한 채
왜 열도에서 바다를 건너온 6세기 축자국의 이와이(磐井) 반란집단으로 인식하는 것이
현 한국 사학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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