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대한사랑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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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대마도의 전방후원분. 한국의 토기와 철검이 발굴되었
            다. 6세기 후반 고분으로 안내하고 있다.
            (우)고분의 평면도. 사진의 앞이 방형, 뒤가 원형으로 원형
            부분 중심에 석관묘가 있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6세
            기 석실이 아니다.






            초기 전방후원분이 던져 주는 역사적 진실

              전방후원분이 바다를 사이에 두고 그 고분 양식이 이
            동했다면 중간 지역인 대마도와 이끼섬에도 고분이 존재

            할 가능성은 충분한 것이다. 실제 답사를 통해 확인한 대

            마도의 전방후원분 2기는 5~6세기 시기의 형태와는 다
            른 것이었지만, 안내문은 당연히 6세기 정도로 표기되

            어 있었다. 하지만 석관이 드러난 것을 보면 기존의 학자
            들이 주장한 북큐슈형 석실과 비후형 석실(肥後型石室)과

            는 거리가 멀다. 우선 외곽을 보더라도 대형급의 전방후

            원분들을 조성하던 시기 사람들이 이런 엉성하게 보이는
            초기 단계의 고분을 조성했다고 볼 수가 없다. 고분의 둘

            레를 감싼 도랑(垓子)도 보이지 않는다. 또 다른 고분은 산
            등성이에 조성되어 있는데, 형태만 전방후원분의 모습이

            지 6세기의 고분의 특징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최근 이끼섬에도 한국 고대사의 비밀이 담긴
                                                                  한일 고대사의 비밀이 담긴 섬, 이끼섬에 대한
            유적이 무수히 존재하고 있으며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최초의 연구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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