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 - 대한사랑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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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을 일본 야먀토 정권의 대표적인 묘제로 주장하거나 그 피장자

            는 백제에 의해 한시적·임시적으로 분사(分使)된 왜(계)의 군사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일본 내 입장은 신중하다. 일왕 가계의 것으로 신성시되는 무덤 형태가 한반도

            에 존재한다는 자체가 충격이기에 가능성은 두 가지로, 일왕의 가계와 연결된 사람들

            이 한반도 남부에서 왔거나 관련된 사람들이 한반도 남부로 진출했다는 것인데, 당연
            히 지금은 후자에 집중하는 경향이 짙다.



            열도에서 전방후원분을 조성한 왜인들의 정체는?
              전방후원분의 기원이 왜(倭)였음을 주장하는 한·일사학자들이 절대 언급하지 않는 내

            용이 있다. 바로 열도에 전방후원분을 조성하던 사람들이 본토의 왜인이었는지, 한반
            도에서 건너간 일명 도래인이었는지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마치 그 시기에 한국인과

            일본인이 별도도 다른 공간에 살고 있었던 것처럼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 한일고

            대사의 현재 상황이다.
              왜 양쪽 다 이 부분의 연구를 등한시 하는가? 일본학계에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러한 무덤 형태가 일본 본토의 고유 무덤 형태가 아닌 새롭게 등장한 것이라는
            점이다. 고려대 故최재석 교수의 연구대로 이 시기는 한반도에서 많은 이들이 대거 바

            다를 건너 열도에서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이다. 도쿄대학교 인류학과 하니하라 가즈

            로(埴原和郞) 교수 등 일본학자들은 BCE 300년(조몬시대 말기) 당시 일본열도의 인구는 7
            만5800명이었는데, 1000년 후인 CE 700년에 539만9800명으로 증가한 것은 당시

            왜 열도로의 대규모 인구이입(人口移入)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BCE 300년경부터 CE

            700년까지 원주민의 비율과 도래인(진출자)의 비율이 1:9라는 수치는 당연히 전방후원
            분의 고분 형태도 이러한 이동한 사람들이 가져온 양식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북한

            학자 조희성은 이 특이한 고분 형태를 만든 세력에 대해서 일본 고분 문화 시기가 대체

            로 3세기 말-4세기 초부터 7세기경까지여서 3세기 말경부터 서부 일본에 갑자기 나타
            나는 무덤들은 전적으로 조선 이주민 집단의 진출지나 정착지에서 나타난다고 하였다.

            즉 3세기 중엽과 말경에 일본 열도에 집단 진출한 이들이 일본 고분 문화를 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열도의 전방후원분이 있는 곳은 대부분 주변에 조선식 지명이 많고, 조선인

            들의 집단 주거지가 있었으며, 반드시 조선식 산성이 마을을 감싸고 있고, 게다가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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