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대한사랑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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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보는 조그맣고 동그란 무덤 형태가 되었다. 일단 전방후원분은 형태부터
가 다른 고분과 차별된다. 사각형과 원형 형태의 결합 혹은 삼각형과 원형 형태의 결합
모습으로 생긴 무덤인 것이다.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규모가 더 크다고 알려져 세계에서
가장 큰 무덤으로 주목받는 것이 전방후원분 형태인 닌토쿠(仁德) 일왕의 무덤이다.
한일 고대사와 전방후원분 논쟁의 시작과 현재
전방후원분이 한일고대사 논쟁의 불씨가 된 이유는 일본의 경우, 이 고분이 고대 국
가를 형성해 가는 시기의 고분으로 천왕가의 기원과 연결되어 있고 이러한 형태의 무덤
이 일본 본토에 수 천기가 존재하는 일본의 기원과도 직결되는 무덤 형태이기에 반드
시 그 기원이 일본이 되어야 한다고 당연히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형태의 무
덤이 멀게는 고구려 영역의 자강도 돌무지 무덤에서 나타나고 그 이후 전라도 지역에
18기 정도가 발견되었는데, 숫자와 무덤 규모는 작지만 일본학계에서는 민감하게 반
응하며 ‘어디가 먼저인가?’를 따지는 한·일 학계 간의 자존심 대결을 계속 진행하여 왔
다. 특히 이 무덤이 출현하는 시기는 『일본서기』에 ‘임나일본부’가 등장하는 시기이기
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임나일본부의 존재 시비를 떠나서 당시 왜의 영향력이 한반도
남부에 미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만 하더라도 한일 고대사의 방향은 많이 수정될 수
있는 것이기에 일본학계의 관심은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 기원지가 일본으로 자연스럽게 자리매김 되어 갈 당시 그러한
무덤이 한반도에도 존재하며 일본 고유 양식이 아니라는 주장을 처음으로 제기하고 연
구한 고고학자가 영남대 강인구 교수(2022년 작고)였다. 그는 전방후원분의 형태가 나타
나는 지역이 전라지역만이 아니라 함안, 고성 외에도 대구 신지동 1호분, 선산 낙산동
5호분, 고령 지산동 1호분, 성주 성산동 6호분, 의성 탑리 고분과 한강 유역 고분에도
있으며 남해안과 낙동강 유역 고분을 정밀 조사하면 더 많은 전방후원분의 형태가 발
견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일본 사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는데, 그가 서울
대 사학과에서 문헌 사학을 익힌 후 서울대 대학원을 거쳐 1978년 일본 큐슈대학(九州
大學)에서 고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전문고고학자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앞장서서 연구한 한국의 전방후원분은 당시 많은 주목을 받으면서 전라지역에
서 발견된 고분들은 그 조성 시기가 대체로 4세기 정도의 초기 고분으로 발표되었다.
그런데 최근의 한국 사학계에서 바라보는 전방후원분에 대한 시각은 그때와는 사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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