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5 - 대한사랑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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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갑족 집안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우당 집안
삼한갑족(三韓甲族). ‘삼한에서 가장 으뜸가는 문벌 집안’을 말한다. 삼한은 마한, 변
한, 진한으로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나라 역대 집안 중 최고의 귀족 가문을
일컫는 말로 근대에 이르러 이런 찬사를 받을 집안이 여럿 있지만, 우당(友堂) 이회영(李
會榮:1867~1932) 선생 집안을 빼놓을 수 없다.
오성과 한음에서 오성으로 알려진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의 후손으로 10
명의 재상을 배출하였다. 경주 이씨 백사공파인 우당 집안은 9명의 영의정(4명의 贈 영의
정 포함)과 1명의 좌의정 그리고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 시절 우당의 동생인 성재 이시영
(李始榮, 1869~1953)이 부통령을 지내서 성재까지 포함하면 총 11명의 재상급 인물이 한
집안에서 쏟아져 나온 셈이다. 재산은 약 3만 석에 이르러 부와 귀에 있어서 조선 최고
의 집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이 패망하여 국권이 피탈 당하고 대일 항전기로
접어들었다. 그러자 우당을 비롯한 6형제는 모든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망명하는 결단
을 내린다. 모든 재산을 헐값으로 처분하였다. 이렇게 해서 마련한 돈으로 만주에 가서
세운 학교가 바로 그 유명한 신흥무관학교였다. 일본군과의 무장투쟁을 위해서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육군사관학교가 신흥무관학교인 셈이다. 여기서 배출된 병력은 당대
최강 전력이었던 일본 육군을 상대로 해서 대승을 거둔 청산리 전투에 투입되었다. 6형
제 가운데 우당을 비롯한 5형제는 중국에서 병들어 죽거나 고문으로 죽었고, 다섯째인
이시영 한 사람만이 해방 후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있다.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로 사회
로부터 정당한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리는 명예(노블레스)만큼 의무(오블리주)를
다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을 보여준 우당 이회영에게는 그
의 옆을 지켜준 부인 이은숙이 있었다.
대갓집 새댁에서 독립운동가로
이은숙은 충남 공주시 정안면 사현에서 화람 이덕규(李悳珪)와 어머니 남양홍씨 사
이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한산 이씨인 목은 이색의 후손으로 충절과 기개가 뛰어
난 집안에서 성장하였다. 한글과 천자문, 소학언해 등 한문을 읽고 쓰는 능력을 두루
갖추었다. 20세인 1908년 10월 감리교파 상동교회 예배당에서 재혼남 이회영(李會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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