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7 - 대한사랑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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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제국의 호족, 이성계 일가                             없는 한 대대손손 상속되는 것이 일반적이었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일                    다. 그래서 아들 익조 이행리, 도조 이춘, 환조
            가는 고려가 쌍성총관부를 되찾기 전에는 고려                     이자춘도 모두 몽골 제국의 천호가 되었다. 이

            가 아니라 원나라에 속한 사람이었다. 이성계                     행리의 경우 여몽연합군이 일본원정을 할 때,

            의 고조부인 이안사(李安社, ?-1274)는 세종대왕                그 일원으로 고려에 와서 충렬왕을 만나기도
            의 여섯 조상들인 육조(六祖) 가운데 첫 번째 인                  하였다. 그때 그는 자신의 부친 이안사가 몽골

            물로서 목조(穆祖)로 추존된 인물이다. 그는 원                   에 항복한 것에 대해 사과를 하였다. 충렬왕은

            래 전주 사람이었지만, 산성 별감과 한 기녀를                    당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
            두고 다투는 바람에 삼척(당시에는 강릉도 삼척현)                  라며 양해해 주었다.

            으로 이주를 하였다. 『태조실록』에 의하면 170                   이행리는 다른 천호들과의 불화로 오동을
            여 가구가 그를 따라갔다 하니 보통 사람은 아                    떠나 1290년 쌍성총관부의 등주(登州)로 이주

            니었다. 상당한 재산과 영향력이 있는 호족이                     했는데, 이때 오동에 살던 많은 고려인들이 따

            었다. 그런데 전에 전주에서 싸웠던 산성 별감                    라 내려와 함흥 평야 일대에 정착하였다. 이행
            이 또 삼척으로 발령이 나서 오니 이안사는 다                    리는 이곳에서 이들 고려군민을 관할하는 천호

            시 동북면의 의주(宜州)로 이주하였다. 후일 이                   및 다루가치가 되었다. 이후 이성계의 조부 이
            곳은 쌍성총관부의 지배로 들어가는 곳인데,                      춘과 부친 이자춘 역시 이 관직을 세습하였다.

            당시에는 아직 고려의 영토였다. 그는 의주를                     이자춘은 형이 일찍 죽고 조카 이천계가 어렸

            지키는 의주병마사로 임명되어 곧 원나라의 공                     기 때문에 천호직을 자신이 대신 승계하였다.
            격을 막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원래는 조카 이천계가 성인이 되면 그 관직을

            몽골의 회유 공작에 넘어가 몽골에 투항하여                      돌려주기로 하였으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몽골 백성이 되었다.(1254) 그는 이후 두만강변                  당시 공민왕은 반원 정책의 일환으로 쌍성
            으로 이주하였는데, 몽케 칸으로부터 오동천호                     총관부 지역을 되찾으려 하였다. 쌍성총관부의

            (斡東千戶)라는 직책에 임명되었다. 오동은 함경                   우두머리 즉 총관직은 앞에서 말한 대로 조휘

            북도 경흥 맞은편 두만강 너머 지역으로 오늘                     의 후손들이 대대손손 차지하고 있었다. 당시
            날 조선족들이 많이 사는 옌지(延吉) 지역으로                    총관은 조소생이었는데, 그는 이자춘과 사이가

            추정된다. 그는 천호와 함께 다루가치 직책도                     좋지 않았다. 이유는 이자춘이 쌍성총관부에
            받았는데, 고려에 접한 만주 일대를 통치하는                     살던 고려인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있었기 때

            몽골 옷치긴 울루스의 고급 관리가 된 것이다.                    문이었다. 이자춘은 1355년 개경으로 몰래 공

              천호 직책은 몽골제국에서는 별다른 잘못이                     민왕을 찾아가 고려에 투항할 뜻을 밝혔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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