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5 - 대한사랑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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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1

            성책동(入省策動)’을 원나라가 받아들이지는 않                    를 정했지만, 원나라 정식 시호로는 혜종(惠宗)

            았지만, 정동행성의 수장이었던 고려의 국왕은                     이다. 그는 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어른들의 권
            정동행성에 대한 실질적 권한을 상실하였다.                      력다툼, 즉 대칸 자리를 놓고 일어난 분쟁에 휘

            입성론자의 중심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기황후                     말려 고려의 대청도로 귀양을 왔다가 다시 중

            의 오라비 기철은 ‘섭행정동성사(攝行征東省事)’가                  국의 광서로 유배되었던 인물이다. 그러다가
            되어 정동행성을 사실상 지배하였다. 이후 정                     운좋게도 13세의 나이로 대칸, 즉 원나라 황제

            동행성은 고려에서 반왕 세력의 집합소가 되어                     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고려 여인을 첩으로 들
            버렸다.                                         였다가 후일 황후로 책봉했는데, 바로 기황후

              몽골은 정동행성을 설치하기 이전부터 고려                     (奇皇后)이다. 당시 원나라는 홍수로 대규모 치

            의 동북면 지역을 직접 통치하는 기관을 세웠                     수사업이 불가피하였다. 운하를 정비하고 둑
            다. 바로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가 그것이다.                  을 쌓는 일에 농민들이 대거 동원되었다. 또 재

            초대 총관으로는 조휘가 임명되었으며, 탁청은                     정이 어려워지자 그는 염세를 대거 인상했는
            천호장에 임명되었다. 쌍성총관부의 수도는 화                     데, 이 때문에 민중들 사이에서 불만이 높아지

            주(和州)이다. 이후 몽골은 조휘의 후손들을 대                   고 소금 밀수가 성행하였다. 1348년 소금 장수

            대로 쌍성총관으로 임명하고, 탁청의 후손들은                     들의 반란을 계기로 원나라는 혼란에 휩싸이
            천호장 직책을 대대로 맡게 했다.                           게 되었다. 해적 두목 방국진의 해상반란으로

              쌍성총관부와 비슷한 예가 동녕부(東寧府)인                    부터 양주 지역의 소금 장수 장사성의 반란, 그

            데 쌍성총관부처럼 서북면병마사 밑의 하급관                      리고 백련교도들의 반란이 줄줄이 일어났는데,
            원이던 최탄 등이 반란을 일으켜 서경과 주변의                    당시 지배층 내에 권력다툼이 벌어진 원나라는

            54개 성을 원나라에 바치고 항복하면서 생겨났                    반란을 제대로 진압할 수 없었다. 1368년 혜종

            다. 최탄은 동녕총관으로 임명되었고, 이 지역                    은 반란군이 가까이 온다는 소식을 접하자, 대
            은 요양행성에 소속되었다. 1290년, 고려의 요                  도(大都, 오늘 날의 북경)를 버리고, 북쪽 내몽골 지

            구로 이 지역은 다시 고려에 반환되었지만, 동                    역의 상도(上都)로 도망쳤다. 그러나 그곳도 주
            녕총관부 자체는 요동 지역으로 옮겨져, 이후에                    원장의 군대에 함락되고 원나라는 멸망하였다.

            도 계속 고려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였다.                        공민왕(재위 1352-1374)은 이렇게 원나라가 쇠

                                                         퇴하던 시기에 왕이 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황
            원나라의 쇠퇴와 고려의 독립                              음무도한 충혜왕의 동복동생이었지만, 형과는

              원나라의 마지막 황제는 토곤테무르(재위                      자질이 다른 사람이었다. 공민왕도 몽골 공주

            1333-1370)이다. 명나라에서는 순제(順帝)라 시호              와 결혼하였지만, 원나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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