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2 - 대한사랑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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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으로 향했다. 그는 서역으로 가는 길목에 있 것,(적민籍民) ③역참을 설치할 것,(치역置驛) ④필
던 육반산(六盤山) 근처에 이르렀을 때, 몽케 대 요한 경우 몽골에 군사 지원을 할 것,(조군助軍)
칸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강남에서 남 ⑤식량을 보낼 것(수량輸糧) 등이었고, 뒤이어 전
송 원정 선봉대를 지휘하고 있던 몽케의 동생 에 불러들였던 다루가치도 다시 받아들이라는
쿠빌라이는 군대를 돌려 북상하고 있었다. 머 요구도 추가하였다. 이러한 여섯 가지 요구들
뭇거리면 대칸의 자리가 막내 동생 아릭부케에 (육사六事)은 몽골제국이 다른 정복지에도 공통
게 넘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대칸 계승을 적으로 적용하던 것으로서 고려는 이러한 육사
놓고 쿠빌라이와 아릭부케 두 형제 사이에 내 를 모두 받아들여야 하였다.
전이 일어날 수도 있는 시점이었다. 고려의 왕
태자 왕전은 두 사람 가운데 어느 쪽을 찾아가 부마국이 된 고려
야 할지 난처했을 터인데, 마침 북상하던 쿠빌 고려의 원종은 나라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
라이를 개봉 근처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해, 1269년 무신 권력자 임연에 의해 일시적으
자신의 부왕 고종 임금이 승하하였다는 소식 로 폐위되는 신세가 되었다. 원나라에 숙위(宿
이 전해져 왕전은 1260년 3월, 쿠빌라이의 대 衛)로 가 있던 세자 심(諶)은 고국으로 돌아오는
칸 추대를 위한 쿠릴타이에 참석하지 않고 급 길에 이 소식을 들었다. 그는 오던 길을 되돌아
히 귀국하였다. 가 쿠빌라이에게 군사 지원을 요청하였다. 쿠
쿠빌라이는 대칸의 자격으로서 왕전을 고려 빌라이로부터 군사를 얻은 왕심은 개경으로 가
왕으로 책봉하였다. 그는 아릭부케와의 내전에 서 부왕인 원종의 복위를 명하는 쿠빌라이의
대비하여 고려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친서를 내밀었다. 그리하여 원종은 간단히 복
있었다. 그리하여 쿠빌라이는 고려의 왕태자가 위되어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환도할 것을 명하
먼 길을 와서 자신에게 항복하러 왔다고 하면 였다. 무신정권의 우두머리인 임유무가 피살되
서 고려에게 유화책을 제시하였다. 고, 개경 환도는 실현되었다. 물론 무신정권도
쿠빌라이는 고려의 새로운 임금 즉 원종(元宗) 무너졌다. 1270년의 일이다.
이 신속의 조건으로 요구한 사항들 즉, 고려에 쿠빌라이의 도움으로 왕위를 되찾은 원종은
주둔하고 있는 몽골 군대와 감독관(다루가치)을 원나라로 가서 감사를 표하고 세자 심을 원나
철수시키라는 요구 등을 모두 들어주었다. 그 라 황실과 혼인시키려 하였다. 그런데 심은 이
러나 곧 쿠빌라이는 속국인 고려에 대한 요구 미 1남 2녀를 둔 유부남이었다. 원종은 확답을
를 문서로 보내왔다. 그 내용은 ①질자를 보낼 얻지 못한 채 귀국한 후 다시 사신을 보내 혼인
것,(납질納質) ②호구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보낼 을 요청하였다. 청혼 4년 만인 1274년 드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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