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3 - 대한사랑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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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인이 허락되어 세자 심은 쿠빌라이의 딸 쿠                     당시 황제인 성종)에 서한을 보내 불만을 토로하

            틀룩켈미쉬 공주(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와 결혼                   였다.   고려사  에는 원나라 사신이 황제의 명
            식을 올렸다. 결혼식 다음 달에 부왕인 원종이                    으로 왕의 인장을 빼앗아 태상왕(충렬왕)에게 주

            사망하자, 세자 심은 쿠빌라이의 책봉을 받고                     어 충렬왕이 다시 왕위에 복귀하였다고 간단

            왕위에 올랐다. 그가 충자 돌림의 첫 번째 왕                    하게 기록하고 있다. 왕위에서 쫓겨난 충선왕
            인 충렬왕(재위 1275-1308)이다. 충렬왕의 통혼               은 원나라로 가서 10년간 숙위(宿衛)를 하였다.

            이후, 많은 고려 왕들이 몽골 공주와 혼인하여                    숙위는 황실에서 황실을 지키는 근위병 역할과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駙馬國)’ 즉 사위의 나                  더불어 황제의 심부름을 하는 젊은이들을 말

            라가 되었다. 몽골 공주와 혼인한 충렬왕의 지                    한다. 몽골어로는 ‘케식’이라 하는데, 왕실 자

            위는 높아졌다. 신하들이 황제의 사위가 된 왕                    제나 유력한 귀족의 자식들이 맡는 영예로운
            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직책이었다. 고려의 젊은이가 케식으로 몽골의

              하지만, 원나라 황제는 고려의 국왕이 마음                    황실에 가면 숙식과 교육을 함께 하는 몽골의
            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폐위시키고 새로운                      왕자들과 친분을 쌓게 된다. 충선왕 역시 이러

            사람을 왕위에 올렸다. 충렬왕이 제국대장공                      한 케식으로 10년이나 원나라에 있으면서 몽

            주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충선왕이 그러한                     골의 왕자들과 친해졌다. 자신이 친한 사람, 훗
            쓰라린 경험을 한 사람이다. 그는 쿠빌라이의                     날 원나라 3대 황제 무종(武宗)이 된 카이산을

            외손자로서 두 살에 세자로 책봉되고, 다섯 살                    황제로 옹립하는 일에 관여하는 등 황실의 권

            에 원나라로 보내져 그곳에서 자랐다. 쿠빌라                     력투쟁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충선왕은 부왕
            이도 막내딸이 낳은 이 외손자를 대단히 귀여                     충렬왕이 죽자, 1308년 원나라에서 돌아와 다

            워하였다. 충선왕은 1298년 부왕 충렬왕이 정                   시 고려 왕위에 복귀하였다.

            치에 흥미를 잃고 양위하자, 23세의 나이로 왕                    원나라에 책봉을 의지하였던 고려 국왕의 지
            이 되었다. 그 역시 부친과 마찬가지로 정략결                    위가 얼마나 취약했던 지를 드러내준 사건이

            혼으로 몽골 공주인 계국대장공주(薊國大長公主)                    하나 있다. 충혜왕 정(禎)은 충선왕의 손자로서
            와 혼인하였다.                                     ‘충’자로 시작하는 네 번째 왕이다. 그는 신하

              충선왕은 계국대장공주와 혼인하기 이전에                      들의 딸과 부인에게도 손을 대고 심지어 자기

            여러 명의 고려 여인들을 부인으로 두었다. 그                    부친의 후비까지 손댈 정도였다. 충혜왕의 방
            가운데 조인규의 딸인 조비(趙妃)를 총애하였는                    탕한 행각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분개하였는데,

            데, 이 때문에 계국대장공주와의 사이가 나빠                     당시 재상 조적(曺頔)처럼 충혜왕을 제거하고 다

            졌다. 계국대장공주는 원나라 황실(그녀의 삼촌인                   른 인물을 왕으로 앉히려 한 시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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