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1 - 대한사랑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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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의 공격으로 금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하 태종 오고타이는 1231년 살리타이로 하여금
자, 금나라의 지배하에 있던 거란족의 한 집단 30만의 군대를 이끌고 고려를 침략하게 하였
이 요나라의 부흥을 내세우며 몽골군과 싸우 다. 몽골군은 순식간에 압록강을 넘어 파죽지
다 고려 땅으로 넘어왔다. 고려의 북쪽 지역을 세로 내려와 개경을 포위하였고, 고려는 항복
유린하던 이 거란족을 진압하기 위해 고려 군 하였다. 당시 고려 임금 고종은 허수아비나 다
대가 출동하자, 이들은 도주하여 평양에서 멀 름없었고, 실권은 무신인 최우에게 있었다. 최
지 않은 강동성으로 들어갔다. 이들을 추격해 우는 앞으로 있을 몽골의 침략에 대비하여 강
온 몽골군과 고려군은 함께 작전을 펼치게 되 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몽골에 대항해 끝까지
었다. 한 달 정도의 공격 끝에 강동성을 함락한 싸우기로 결정하였다. 그러자 몽골은 곧 군대
양국은 1219년 형제 맹약을 체결하였다. 형제 를 파견하여 2차 침략을 하였는데, 침략군 사
관계를 맺었다고는 하지만, 몽골은 이후 고려 령관인 살리타이가 전사하자 철수하였다.
를 매우 난폭하게 대했다. 고려는 몽골 사신이 몽골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더 고려를 침공
오면 수달피나 비단 등을 선물로 주었는데, 한 하였다. 강화도에 웅거한 고려 무신정권은 강
번은 몽골 사신이 고려가 준 비단의 질이 나쁘 화를 제의하고 질자를 몽골로 파견하는 등 항
다고 불평하며 고려 임금 앞에서 땅에다 내팽 복할 것처럼 했지만, 강화도를 나와 고려 왕이
개친 일도 있었다. 몽골은 강자가 약자를 함부 몽골에 가서 정식으로 항복한다는 약속은 끝
로 대하듯이 오만하게 굴었다. 내 지키지 않았다. 1257년부터는 몽골군이 함
몽골과의 첫 접촉 당시 고려가 마주한 것은 선까지 동원하여 강화도를 공격하기 시작하였
만주 지역을 지배하던 칭기즈칸의 막내 동생 으나, 강화도는 쉽게 함락되지 않았다.
웃치긴이다. 당시 웃치긴이 보낸 사절은 저구 1258년 최씨 무신정권이 붕괴되고, 고려 내
유(저고여, 著古與)라는 인물이었다. 저고여는 몇 에서도 항복하고 몽골과의 전쟁을 끝내야 한
년 뒤인 1225년 다시 고려에 와서 공물을 받 다는 강화론이 힘을 얻게 되었다. 마침 몽골도
고 돌아가는 길에, 압록강 근처에서 정체불명 전쟁을 끝내고자 하여 고려 왕이 직접 몽골 조
의 괴한들에게 공격을 받고 피살되었다. 이 소 정으로 와서 황제를 만나 항복식을 치르는 대
식을 접한 웃치긴은 고려의 소행으로 단정하고 신, 왕태자를 보내는 것도 허락해 주겠다고 양
당장 고려를 공격하려고 하였으나, 당시 몽골 보의 태도를 보였다. 그러자 고려는 고종의 아
군은 서하 원정을 앞두고 있어 고려 침공은 수 들인 태자 왕전(王倎)을 몽골로 파견하였다.
년 동안 미루어졌다. 1259년 4월, 왕전은 당시 남송 원정을 위해 이
칭기즈칸이 죽고 난 후, 대칸의 자리에 오른 동 중이던 몽골의 몽케 대칸(헌종)을 만나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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