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대한사랑 15호(20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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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열전 (8)

                      3·1혁명 기미 민족 대표 33인,


                                      의암 손병희




                                            글. 이해영 기자






















                                                                     의암 손병희 선생 ⓒ독립기념관














            적서 차별의 사회 부조리를 경험한 손병희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는 1861년 4월 8일 충청북도 청주군(淸州郡) 북이면(北二面) 대

            주리(大舟里, 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금암리)에서 세금 징수를 담당하는 향리였던 아버지 손

            두흥(孫斗興)과 어머니 경주 최씨(慶州 崔氏)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자는 상현(相鉉), 호는 소소(笑笑)이다. 초명은 응구(應九)로 배다른 서얼 매제이자 동학 2

            대 교주인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에게 받은 도호(道號)가 의암이다.
              재가녀의 자식으로 태어나 서자로 차별을 받게 되자, 부조리한 사회에 저항하는 의

            식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왔으며, 호방한 기질과

            의리도 남달리 뛰어났고, 싸움도 잘했다. 결혼 후에도 서자 취급을 받으며 가족 제사를
            같이 지낼 수가 없자, 곡괭이로 조상의 묘를 파내려고 한 적도 있었고, 초정약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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