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 - 대한사랑_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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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2월 6일 1만5000명의 선발대로 마산 변’을 일으켰다. 왜군은 1904년 4월 14일 밤
포를, 2월 9일에는 서울을 점령한 뒤 지방 각 호위 무관들 4-5명을 살해하고 경운궁(덕수궁)
지를 차례로 점령하고, 3만 명의 대한제국 정 에 침입하여 방화로 경운궁 전각을 전소시킨
규군을 일부 해산하여 1만 명 수준으로 축소 것이다. 고종은 경운궁 옆의 도서관으로 피해
시켰다. 침략한 일제 총병력은 육군 4만5000 겨우 목숨을 구했다.
명과 (육전대를 가득 실은) 수십 척의 해군 전함이
었다. 국민전쟁의 준비와 개전
일본 해군은 1904년 2월 8일 오후 4시 인천 은인자중하던 고종은 러시아 주력군이 국내
앞바다의 팔미 해전을 도발해 러일전쟁을 일으 로 진공하면 한반도에서 러시아군과 함께 거국
켰다. 왜군함대는 그로부터 7-8시간 뒤 늦은 적·거족적으로 결전을 치르는 항전전략을 수
밤 여순을 공격하고, 이틀 뒤인 2월 10일 러시 립했다. 이에 따라 고종은 니콜라이 황제에게
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보내는 비밀 친서로 러시아군이 국내로 진공하
그리고 일제는 1904년 4월 14일 고종을 불 면 “국민전쟁(все-нарόдная война)”을 벌여 거족
태워 죽이려고 분시(焚弑)를 기도하는 ‘갑진왜 적으로 한반도에서 러시아군의 전투를 지원할
덕수궁 전경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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