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 - 대한사랑_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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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에는 「서북간도와 부근 각지 인민들에 대 ‘대한독립의군 참모중장’이라고 주장하자 수
한 칙유」라는 밀지도 내렸다. 안중근은 고종의 사관은 임명권자가 누구냐고 물었고, 안중근
이 밀지들을 다 본 것이다. 은 대한독립의군 총대장 ‘김두성(金斗星)’이라고
그리고 안중근과 인터뷰한 내용을 보도한 거듭거듭 밝혔다. 일제 왜경은 이 ‘김두성’의 정
러시아 신문 <노바야 쥐즈니>의 1909년 10월 체를 밝혀내지 못했고, 지금까지 한국 사가들
27일자 기사에 따르면, 안중근은 “이번 암살사 도 마찬가지다.
건에 참가한 한국인은 총 26인이고, 그들은 다 그러나 유학의 관점, 고종을 황위에 복위시
이토가 통과하는 철도선에 배치되어 있었다”라 키고자 했던 안중근의 충성스런 복벽주의, 그
고 대답하고 있다. 그러나 이토가 탄 특별열차 의 자(字) ‘응칠(應七)’등을 고려하면, ‘김두성 코
는 중간역에서 쉬지 않고 막 바로 하얼빈까지 드’는 의외로 쉽사리 풀린다. 《논어》<위정(爲
달려갔다. 이 통에 안중근만이 성공리에 이토 政)>편에서 보듯이 북진(北辰, 북극성)은 임금을
를 저격할 수 있었다. 고종은 모두 26명의 ‘이 상징한다. 김두성의 ‘두성(斗星)’은 북극성을 중
토처형 특파독립대’를 파견한 것이다. 심으로 공전하는 북두칠성의 약어다. 안중근
의 아명과 훗날의 자는 ‘응칠’이다. 배에 일곱
안중근의‘김두성’= 고종황제 개의 검은 점이 있어 북두칠성에 감응해 태어
안중근이 신문과정에서 자신의 신분을 거듭 났다는 뜻으로 이름을 ‘응칠’이라 했다. 따라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안중근 의사 ⓒ안중근의사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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