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 - 대한사랑_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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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송월사(松月祠)에 향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에 오르고 나라에 공을 세워 추성공신(推誠功臣)
호계사가 세워진 것은 1943년으로, 전남 장 으로 책록되었으며 찬성사(贊成事)에 이르렀다.
성의 만수산에 있던 경현사(敬賢祠)가 1942년 그리고 그는 왕을 대신하여 동정성(東征省)을
일제에 의해 철폐되면서 거기에 있던 임선미의 다스렸고 그 뒤 왕을 호종하여 원나라에 다녀
위패를 모시기 위해 지은 것이다. 그때만 해도 온 뒤 순창군(淳昌君)에 봉해졌으며 전장백상섭
임선미의 후손들은 개성의 두문동에 있는 사당 행정동성사(典蔣伯祥攝行征東省事)를 지냈다. 그리
표절사(表節祠)와 두문동 서원에서 제사를 지냈 고 임중연(林仲沇)은 순창에 터를 잡고 살게 되
지만 남북 분단이 되면서 제사를 모시기 어렵 었는데, 이후 평택임씨에서 분관하면서 순창을
게 되자 호계사에서 제향을 모시게 된 것이다. 본관으로 삼게 된 것이다.
순창임씨 시조 임중연(林仲沇)의 묘소는 허리
순창에 자리한 임선미의 사당, 그 이유는? 가 잘록한 벌의 명당으로 알려진 순창군 순창
그런데 임선미는 개성 두문동에서 순절하였 읍 장덕리에 위치하는데, 임중연의 후손인 임
는데, 왜 그의 사당이 순창에 있는 것일까? 선미가 부친상을 당한 뒤 삼년 시묘를 행한 곳
임선미의 아버지 임중연(林仲沇)은 순창임씨의 이다. 당시 고려 말 상례(喪禮)로는 백일상을 지
시조다. 임중연은 본래 평택임씨로 원시조 임 내는 단상이었으나 효심이 지극하였던 임선미
팔급(林八及)의 15세손으로 고려 충숙왕 때 등과 는 정몽주와 박상충(朴尙衷)처럼 고례(古禮)를 따
하여 벼슬이 우상시, 상시밀직부사(常侍密直副使) 라 선구적으로 예법을 실천한 것으로 유명하
순창임씨 종친들이 순창 호계사에서 제향 하는 모습 ©유튜브채널 임재호 호계사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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