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대한사랑 6월호
P. 52
여말선초 인물열전 (5)
500년간 충절을 지킨 한 가문의 이야기
글. 신현재(세계성씨연맹)
이유헌(理猷軒) 신득청(申得淸) 선생은 평산 신씨 시조 신숭겸의 15세손으로 『두문동
서원지(杜門洞書院誌)』에 포은 정몽주, 도은 이숭인, 인재 이종학 선생과 함께 순절한
11현 중 한 분으로 추앙받는 분이다. 또한 신득청 선생은 영해(寧海) 신씨 시조이면
서 불훤재 신현(申賢)의 손자이다. 고려 말 조선 초의 대격변기를 살았던 신득청 선생
과 그 가문의 역사는 조선 500년 동안 철저한 탄압 속에서 비밀에 싸여 지금까지도
그 실체가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그 수수께끼의 인물과 가문에 대해 알아보자.
신념을 지키기 위해 본관을 바꾸어야 했던 신득청 선생
신득청(1332~1392) 선생의 본명은 신중청(申仲淸)이며 대제학을 역임한 “시직재 신
백청(矢直齋 申伯淸)”의 동생이다. 고려 공민왕 7년인 1358년에 과거에 급제하고 출사
하였는데, 공민왕은 신중청을 얻어 어둡던 조정이 맑아졌다며 '득청(得淸)'이란 이름
을 하사하였다. 이후 1378년 우왕 4년에는 “이부상서대광첨의판문하부당상판사(吏
部尙書大匡僉議判門下府堂上判事) 평산부원군(平山府院君)”에 봉해졌다.
포은 정몽주는 신득청 선생의 인품을 두고 “가히 너그러우니 세상에서 보존될 수
있을 것이다.(可以寬得保於世)”라고 평하며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淸如滾滾水 (청여곤곤수)
直似落落松 (직사낙락송)
直而無尖鏃 (직이무첨촉)
淸而無激冷 (청이무격냉)
맑기는 세차게 흐르는 물과 같고
곧은 것은 낙락장송과 같다.
그러나 곧을지언정 뾰족한 촉이 없고
맑을지언정 심히 차갑지 않다.
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