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2 - 대한사랑 10월호
P. 72

상(桓雄像)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셨다. 그 이름                를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환경에서는 돌을 가지

              을 웅상(雄常)이라 하셨다.  -『환단고기』「단군세기」             고 나무와 비슷한 모습으로 만들어 거목을 대
                                                         신하는 신앙의 상징으로 삼았다. 이런 문화의

              이러한 신목 문화는 후대에 내려와 상징성을                    대표가 바로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이다. 돌을

            강조하기 위해 자연의 나무가 아닌 가공한 나                     이용할 경우에는 나무에는 담기 힘든 ‘영원성’
            무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80                   이라는 상징까지도 담을 수 있어서 사막과 같

            년대만 해도 한국에 많이 남아 있었던 솟대이                     이 척박한 기후에서는 더없이 좋은 재료가 되
            다. 그리고 우리나라나 일본, 중남미와 같이 나                   었다. 물론 나무로 한다고 해서 ‘영원성’이라는

            무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에서는 주로 살아있                    상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무의 경우는 “재생

            는 나무를 대상으로 삼았지만, 이집트와 같이                     과 부활”이라는 ‘순환성’을 통해 ‘영원성’을 상
            사막화가 진행되어 신목으로 삼을만한 나무                       징했다. 또, 나무가 많다고 하여 무조건 나무로









                                                                                     (좌)한국의 솟대
                                                                                (우)이집트의 오벨리스크






































            72
   67   68   69   70   71   72   73   74   75   76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