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7 - 대한사랑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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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金帳汗國, Golden Horde)으로 알려져 있는               대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증명하라고 명했다.

            데, 중세 몽골족의 역사에 정통한 러시아 역사                    구육 칸은 카라코룸까지 온 알렉산드르를 키예
            가 게오르기 베르낫스키에 의하면 킵차크 한국                     프 대공으로, 동생 안드레이는 블라디미르 대공

            의 원래 이름은 ‘백(白)한국’(아크 오르다)이었                  으로 임명하였다. 이처럼 러시아 공들의 지위는

            다고 한다. 몽골인들에게 백색은 서쪽을 상징                     철저히 몽골 지배자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하였기 때문에 여러 울루스들 가운데 가장 서                      몽골의 지배를 인정하지 않는 자에게는 가차

            쪽에 위치한 킵차크 한국을 백한국이라고 불렀                     없는 보복이 따랐다. 블라디미르 대공 안드레이
            다는 것이다. 베르낫스키에 의하면, 동양의 저                    가 바투의 아들 사르탁에 대한 충성선서를 거

            자들은 킵차크 한국을 ‘금장한국’이라고 부르                     부하자, 사르탁은 즉각 블라디미르로 징벌군을

            지 않았다. ‘금장한국’은 15세기에 크림 한국과                  파견하였다. 안드레이는 참패하여 노브고로드
            카잔 한국이 킵차크 한국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를 거쳐 스웨덴으로 도주하였다. 몽골군은 그

            이후 카잔 한국을 가리키는 명칭이었다고 한다.                    의 영지 수즈달을 무자비하게 약탈하였다. 사
                킵차크 한국의 칸인 바투는 킵차크 유목민                   르탁은 블라디미르에 대한 안드레이의 통치권

            들은 직접 지배하였지만, 루스족 즉 러시아에                     을 형인 알렉산드르 네프스키에게 넘겨주었다.

            대해서는 간접 지배 방식을 취했다. 루시 즉 러                   몇 년 뒤 알렉산드르가 새로운 칸인 울락치에
            시아의 공들이 조공과 세금을 거둬들이는 역할                     게 동생을 용서해주도록 간청하여 안드레이는

            을 맡고, 칸은 그들의 지위와 권력을 인정해주                    다시 수즈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 알렉산

            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통치 방식에서는 러시아                    드르와 안드레이 형제가 러시아에서의 병력징
            공들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했다. 러시아 공들                     집과 세금징수에 적극적으로 나섰음은 두말할

            가운데에서 블라디미르 공국의 대공 야로슬라                      나위도 없다.

            블이 1242년 처음으로 바투 진영으로 와서 충                    알렉산드르 네프스키는 몽골에 협력하는 것
            성을 맹세하고 그 지위를 승인받았다. 야로슬                     만이 러시아인들이 살아남을 수있는 방법이라

            라블은 구육이 새로운 대칸으로 즉위할 때, 몽                    고 보았다. 당시 서북쪽에서는 독일의 튜튼 기
            골의 수도 카라코룸까지 가서 대칸 즉위식 행                     사단과 스웨덴이 러시아를 향해 세력을 확대해

            사에 참여하였다. 그는 불행히도 돌아오지 못                     오고 있었다. 몽골에 반기를 들면 결국 서쪽은

            하고 몽골에서 병사하였다. 그의 두 아들, 알렉                   독일 기사단과 스웨덴 세력에 넘어가고, 동쪽
            산드르 네프스키와 안드레이도 바투에게 충성                      은 몽골에게로 넘어가게 될 것으로 알렉산드르

            을 맹세하기 위해 사라이로 갔는데, 바투는 그                    는 판단했다. 서부 러시아의 갈리치아 대공 다
            들에게 몽골 제국의 수도 카라코룸으로 가서                      니엘은 그와 다른 입장을 취했다. 다니엘도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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