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3 - 대한사랑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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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병주(兵主)로 모셔지는 제녕시 문상현에
위치한 치우총 유적, 마지막으로 사시주(四時主)
를 모시는 일조시(市) 낭야대(琅琊台)까지 방문했
다. 팔신제 유적 중 다섯 곳을 보면서 동이족(東
夷族)의 천제 문화가 강태공을 통해 중국에 전해
져 유지 보존되고 있는 현장을 살펴볼 수 있었
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우리 고대 문화에 대해
얼마나 애정을 갖고 연구, 보존하고 유지하며
후대에 전수하고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신선 문화를 만나다 신청관 입구(상)
연하동굴(하)
이번 탐방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산동성 지
역에 남아 있는 신선(神仙) 문화를 찾아보는 것 계승하는 장소였다. 신청관은 역사적으로 여러
이었다. 신선 문화는 탐방 이틀째에 주로 이루 차례 훼손되는 과정에서 20세기 중반 이후에
어졌는데, 첫 번째가 연태시 모평구에 위치한 는 거의 폐허 상태에 가까웠다가 2006년에 복
곤유산(昆崳山)이다. 곤유산은 동쪽의 곤륜산이 원 공사가 진행되어 현재의 모습이 갖추어졌다
란 별칭이 붙을 만큼 도교의 중요한 장소로 여 고 한다. 깨끗하게 복원된 신청관에는 젊은 수
겨지는 곳이다. 이곳에서 살펴볼 곳은 신청관 련자들이 많이 보였다.
(神清觀)과 연하동굴(煙霞洞窟)이다. 나이가 있는 본래는 신청관을 둘러본 뒤 다음 일정을 위
분들은 오르기 힘든 산 초입과 중턱에 위치해 해 내려올 계획이었다. 하지만 탐방단들의 의
있어서 다 함께 오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욕이 앞서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나둘 연
신청관은 중국 도교의 성지로 신(新)도교인 하동굴을 향해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고 있었
전진교(全眞敎)의 발상지이다. 원래는 전도암(全 다. 초가을이었지만, 늦더위 때문에 모두가 땀
道庵)이라 불리던 작은 암자를 기반으로 하다가 을 뻘뻘 흘리며 올라 마주한 곳에는 ‘연하(煙霞)’
금(金)나라 시대(북송 이후)에 명칭을 바꾸고 확장 란 두 글자가 새겨진 동굴이었다. 본래 이 동굴
되었다고 전해진다. 곤유산과 연하동굴 일대는 은 자연적으로 형성되었지만, 후에 인공적으로
전진교 창시자 왕중양(王重陽)이 이곳에서 후학 조금 더 뚫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연하’란
들을 지도하고 교단 체계를 정비한 장소로 알 ‘구름 자욱한 연기처럼 아련한 빛’이란 의미라
려졌는데, 신청관은 그런 전통을 상징적으로 고 했다. 동굴 내부에는 왕중양과 그로부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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