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대한사랑 14호(20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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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을 주장한 영국인 베델의 발자취】
•구국 운동 보도
•을사늑약 무효 주장
•항일 무장 투쟁 보도
•헤이그 특사 보도
•일본의 명성황후 살해 사건 보도
•국채보상운동 총합소
•신민회 활동의 시작점 결성
【약력과 <대한매일신보>】
•1872.11.3 영국 에거튼 로드 호필드(Egerton Road Horfield) 출생
•1885~1886 머천드 벤처러스 스쿨의 고등부 과학 과정에서 수학
•1888 가족과 함께 일본 고베로 건너가 동생 허버트(Herbert)와 함께
베델 브라더스(Bethell Brothers) 무역상 설립
•1900.5.26 고베에서 마리 모드 게일(Mary Maude Gale)과 결혼
•1901.3.24 외아들 허버트 오웬 친키 베델
(Herbert Owen Chinki Bethell) 출생
•1904.3.4 <런던 데일리 크로니클지(The Daily Chronicle)>의
특별 통신원으로 임명됨
•1904.3.10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하여 <런던 데일리 크로니클>의
특별 통신원 임명되어 한국에 옴
•1904.4.14 통신원으로서 최초이면서 마지막 기사를 보냈다.
“대한제국 궁중의 페허화(Korea Emperor's Palace in Ruins)” 라는 제목으로
일제의 방화로 불타버린 경운궁의 화재에 관한 내용을 실었다.
•<대한매일신보> 창간
1904.4 신문 창간 준비 착수 대한인의 거국적인 민중운동과 애국지사들의
우국충정에 감화되어 양기탁 등 민족진영 인사들과 접촉하고 신문 제호는
“코리아 타임즈(The Korea Times)”라 정하고 창간 자금은 전액 베델이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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