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대한사랑 14호(20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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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요청하였다. 당시 ‘울딘’이라는 발렌티아누스를 서로마 황제로 임명
이름의 왕이 이 훈족 집단을 다스리고 하고 찬탈자 요한네스를 정벌하기 위
있었는데, 울딘은 이탈리아로 들어온 해 군대를 파견하였다.
라다가이수스의 고트족 집단을 이탈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는 하였지만
리아 북부에서 격퇴하였다. 울딘 왕은 정통성이 약해서인지 요한네스의 부
수년 전인 400년에는 다뉴브 강을 건 하 장군들 중에서 일부가 동로마 군대
너 도주해온 또 다른 고트족을 공격하 에 합세하자 요한네스는 절망적인 상
여 그 우두머리인 가이나스의 머리를 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에게는 남은 병
베어 콘스탄티노플로 보낸 적이 있다. 력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요한네스는
울딘은 로마의 동맹자로서 이렇게 로 심복인 아에티우스를 훈족에 급파하
마를 도왔던 것이다. 였다. 당시 아에티우스(390-454)는 황
궁의 관리를 맡아보는 직책을 맡고 있
로마의 실권자 아에티우스와 훈족 었는데, 그가 훈족에게 특사로 파견된
테오도시우스 황제(테오도시우스 1세) 것은 훈족의 지도자들과 친분이 있었
가 395년 죽고 나서 두 아들이 동서 기 때문이다.
로마의 황제가 되었다. 장남인 아르 아에티우스는 서로마 군대 고위인
카디우스는 동로마를 통치하고, 11세 사의 아들이었는데, 그 때문에 청소년
에 불과한 차남 호노리우스는 서로마 기에 훈족에게 볼모(obses)로 가서 몇
황제가 되었다. 호노리우스는 423년 년간 지낸 적이 있었다. 당시 국가들
에 죽었는데, 후사가 없었다. 그가 죽 사이에 조약을 체결하면 그것을 성실
자 황제 자리를 차지한 것은 요한네 히 지키겠다는 보장의 의미로 고위 인
스라는 문관 출신의 인물이었다. 그러 사의 아이들을 볼모로 보내는 관행이
나 동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는 있었는데, 아에티우스는 로마의 볼모
그를 황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기 로서 수년간 훈족의 왕자들과 함께 지
가문의 사람 즉 고모인 갈라 플라키디 냈다. 그는 그 전에도 서고트족에 가
아의 어린 아들 발렌티아누스가 있었 서 3년간 볼모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기 때문이다. 테오도시우스 2세에게는 아에티우스는 기마술과 궁술도 능했
요한네스는 정통성이 없는 찬탈자에 고 훈족과 통역 없이 대화할 수 있을
불과하였다. 그래서 그는 네 살짜리 정도였다고 하는데, 이는 수년간 훈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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