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3 - 대한사랑 14호(20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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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본영이 위치한 판노니아를 공격한 부인 관할 하에 있던 곳이었는데, 그
다는 정보 때문에 회군했다는 이야기 녀는 로마의 사절들에게 환대를 베풀
도 있는데, 이쪽이 더 설득력이 있는 어 주었다. 음식은 물론이고 잠자리를
것 같다. 그러나 동로마 군대는 훈제 같이 할 미녀들도 보내주었다고 하는
국에 별다른 타격을 가하지는 못했다. 데, 로마사절단은 이 호의에 대해서는
아틸라는 판노니아로 귀환한 즉시 동 숙고 끝에 정중히 사양하였다고 한다.
로마에 사절을 보내 미납된 공납금을 낯선 방문객에게 음식을 주고 잠자리
지불하지 않으면 동로마를 황폐화시 도 제공하는 유목민의 관습에서 나온
켜 버리겠다는 위협을 하였다. 역사가 환대였을 것이다.
우연에 많이 좌우되는지 어이없게도 프리스쿠스는 아틸라를 접견하기
아틸라는 다음 해에 급사하고 만다. 위해 밖에서 기다리던 중 한 그리스인
게르만 처녀를 새로운 신부로 맞아들 을 만났다. 그는 다뉴브 강 주변의 도
이는 결혼식 날 과음해서 죽었다는 이 시 출신으로서 부유한 상인이었지만
야기가 있지만, 정확한 사인은 모른다. 훈족의 원정 때 포로로 끌려왔다가 후
일 전쟁에서 공적을 세워 자유로운 몸
프리스쿠스의 기록에 나오는 훈족의 모습 이 되어 훈족 여자와 결혼하여 자식도
그리스 역사가 프리스쿠스는 동로 낳고 만족스럽게 살고 있다고 하였다.
마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가 아틸라에 그 그리스인은, 훈 사람들은 전쟁이
보낸 사절단의 일원으로 449년 아틸 끝나서 돌아오면 누구의 괴롭힘도 받
라를 방문한 사람이었다. 학자인 그는 지 않고 편안하게 산다는 것이다. 로
대사인 막시미누스를 수행하는 비서 마에서는 돈이 없는 사람은 법에서 보
관이자 서기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 장한 권리도 누리지 못하고 무거운 세
인다. 사절단은 콘스탄티노플을 출발 금에 찌들려 살지만, 훈족 사회에서는
하여 근 한 달의 여정을 거쳐 판노니아 훨씬 삶이 만족스럽다고 말하여 프리
에 있는 아틸라의 본영에 도착하였다. 스쿠스를 놀라게 만들었다.
프리스쿠스 사절단은 아틸라 본영에
도착하기 전 하루는 폭우를 만나 훈족 킬데릭 무덤의 부장품
마을에 들어가 신세를 지게 되었다. 우 아틸라는 그에게 신속한 게르만족
연히도 그 마을은 아틸라의 죽은 형의 왕들에게 후한 선물을 베풀었던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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