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8 - 대한사랑 14호(202502)
P. 68
오히려 힘들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명치유신 때 모든 것을
천황 중심으로 정립시키고자 하면서 스스로 자신들의 고대사를 부정했기 때
문이다.
일본이 ‘일본’이라는 국호를 처음 사용하였을 때는 670년으로, 660년 백제
가 망하고 대규모의 백제 유민이 일본 땅으로 넘어온 이후다. 그때 당시 수도
권 지역의 약 80%가 백제 유민이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본에는 백제인
들이 넘쳐났으며, 668년 멸망한 고구려의 유민 중 일부도 넘어온 점을 감안
하면 그 이전 일본에 살던 사람들보다 압도적인 수의 유민들이 일본을 이루
는 주된 민족이 되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당시 정부의 고위층들 또한
백제와 깊은 연관이 있었음이 너무나 명확하므로, 일본이라는 나라는 한반도
와의 연결고리를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황임이 너무도 자명하다. 하지만 명치
유신 정부는 이를 인정할 수 없었기에 일본 천황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
는 신이며, 일본은 그로부터 자생한 것이라는 ‘천손강림’을 주장했다. 이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한동안 일본에서 바른 역사를 주장할 수 없는
이유가 되기도 했는데, 이로 인해 일본 정신문화의 근원이 되는 신도 문화 또
한 일본에서 자생했다는 논리가 성립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 전에 일본 땅에 살던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무관한 토
착민이었을까? 일본의 4대 국립박물관 중 하나인 큐우슈우국립박물관(九州國
立博物館)을 비롯한 지방 박물관을 가 보면 일본이라는 나라가 세워지기 전인
야요이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에서 넘어온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일본
의 저명한 인류학자이자 전 동경대(東京大, 토오쿄오다이)교수인 하니하라 카즈로
오(埴原和郎, はにはら かずろう)도 그의 저서 『일본인의 루트(日本人のルーツ)』에서 야
요이시대의 인류 비율을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이 한반도에서 넘어온 도래인
이라고 주장했다. 고고학적으로도 일본 각지에서 출토되는 세형동검이 이러
한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데, 추후 다루게 될 출운대사(出雲大社, 이즈모 타이샤)가
있는 시마네현(島根縣)지역에서 한반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많은 세형
동검의 흔적이 발견되었고, 서일본 전역에서도 세형동검이 출토되고 있기 때
문에, 늦게 잡아도 세형동검이 표지 유물인 단군조선 후기부터는 일본열도와
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