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1 - 대한사랑 14호(202502)
P. 71
2025. 2
한 신사들 또한 이렇게 변질된 신도의 영향으로 세워진 것들이다. 하지만 이
신도도 제2차 세계대전 패망 이후 연합국 군최고사령관 총사령부(GHQ)의 정
교분리령(政敎分離令)에 의해 정치와 신도가 분리되면서 국가신도의 형태를 잃
게 되었다. 중앙에서 관리해 오던 시스템을 해체하여 각 신사 별로 종교법인
을 세우고 신사 별로 운영하게 하는 지금과 같은 시스템이 되어 지금에 이르
렀다.
신도 문화의 초석이 된 고신도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의 신도 문화는 우리나라의 고대 신앙인 신교
문화가 일본의 역사와 함께 발전된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신도 문화를 제대
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고대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
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우리나라의 고대 신앙문화는 어떠했을까? 신라시대
의 학자 최치원은 유도와 불도가 들어오기 전에 우리나라에는 현묘한 도가
있는데, 그것을 풍류라고 했다. 그 풍류를 신교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신
교 문화에 대해서는 『환단고기』에 자세히 적혀 있다. 『환단고기』「단군세기」
<11세 도해단군조>를 보면
11세 도해단군 재위 원년에 오가에게 명하여 12명산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을 택해
국선소도를 설치하게 하였다. 그 둘레에 박달나무를 많이 심고 가장 큰 나무를 택하여
환웅상으로 모시고 이름을 웅상이라 하였다. - 『환단고기』「단군세기」
고 되어있으며, 『태백일사』「삼신오제본기」에 또한
삼한의 옛 풍속이 10월 상일에는 모두 나라의 큰 축제에 참여하였다. 이때 둥근 단을 쌓
아 하늘에 제사 지냈는데, 땅에 대한 제사는 네모진 언덕에서 지냈고 조상에 대한 제사
는 각목에서 지냈다. 산상과 웅상은 모두 이러한 풍속으로 전해 오는 전통이다. … 소도
에서 올리는 제천행사는 바로 구려 교화의 근본이 되었다. … 이에 온 나라에서 이 소도
제천 예식을 숭상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태백일사』「삼신오제본기」
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