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대한사랑_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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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7월 하순, 신의주 지방법원에서 사형을 구형했고, 1925년 3월 12일 평양형무

            소에서 순국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최시흥 장군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했다.

              이렇듯 최시흥 장군과 천마산대는 국내에서 무장 항일운동을 전개한 대표적인 독립

            운동 단체였다. 그들의 헌신과 희생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했다. 최시흥 장군 순국
            100주년을 맞아 그 뜻을 다시금 되새겨야 할 것이다.










              1925년 3월 25일자 <독립신문>에 추도문을 게재하여 그의 순국을 애도했다. 그 추

            도문을 읽기 쉽게 현대의 글로 풀어서 썼다.







              최 장군은 이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뒤로하고 멀고도 먼 길을 홀연히 떠나
              셨습니다. 아, 장군이시여! 한 많고 원통한 그 길을 떠나시면서 장군의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던

              뜨거운 피는 얼마나 요동쳤겠습니까? 아, 장군을 떠나보내며 우리들의 눈에는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립니다. 이것이 시대의 비극입니까, 아니면 하늘의 시샘입니까? 혁명의 용사였던 최 장군
              은 이제 어디로 가셨단 말입니까?

              나라가 무너지고 원수들이 우리를 향해 도전하고 있는 지금, 장군은 이미 이 땅을 떠나셨습니

              다. 장군이여, 지난 5~6년간 폭풍 같은 세월 속에서 겪으셨던 처절한 전투와 고된 싸움은 이제
              무엇으로 기념할 수 있을까요? 장군의 호령은 원수들을 떨게 만들었고, 장군의 용맹은 적군을

              사방으로 흩어지게 했습니다. 장군의 칼과 총은 수 많은 적들을 무찔렀습니다. 그런데 지금 장
              군은 더 이상 우리 곁에 계시지 않습니다.

              장군은 피 묻은 칼을 씻지도 못했고, 적에게 쏠 총알을 장전한 채로 떠나셨습니다. 일본 천황의

              진영에 닿아 그들을 물리치고, 동경(도쿄)의 함락 소식을 듣기까지, 조국 독립의 승리의 외침을
              보기도 전에 말입니다. 장군은 그 모든 것을 보지 못한 채 먼 길로 떠나셨습니다.

              천마산에서 바람과 이슬을 맞으며 주린 배를 견뎌내신 날들은 얼마나 길었으며, 압록강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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