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대한사랑_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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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이 해체의 길을 걷자, 로마로 돌아갔다. 당 싸움에서 패배하였다. 이 전투 후 에데코의 아
시 서로마는 율리우스 네포스(재위 474-475)라 들 후눌프 왕자는 동로마 제국으로 넘어갔는
는 인물이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데, 그곳에서 출세하여 동로마의 요충지 일리
그는 오레스테스를 ‘파트리키우스’라는 칭호 리쿰 속주의 장군이 되었다. 스키리족의 또 다
와 함께 로마 대장군으로 임명한다. 당시 파트 른 왕자 오도아케르는 그 동생이었는데, 470
리키우스는 로마의 재상이나 대장군 등의 소수 년경 스키리족과 헤룰족 등의 게르만 병사들을
사람들에게 로마 황제가 부여한 칭호였는데, 이끌고 이탈리아로 들어왔다. 당시 서로마 제
오레스테스가 어떻게 하여 네포스 황제 하에서 국의 실권자 리키메르 장군과 안테미우스 황제
이렇게 출세를 할 수 있었던지는 모르겠다. (재위 467-472) 사이에 벌어진 내전에서 리키메르
좌우간 서로마 제국의 대장군이 된 다음, 그 의 요청으로 온 것으로 보인다. 리키메르도 오
는 율리우스 네포스 황제를 쫓아내고 서로마 도아케르처럼 로마인이 아니라 만족 출신이었
제국의 실질적 권력자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 다.
의 어린 아들 로물루스를 황제로 앉혔는데, 이 스키리족 왕자였던 오도아케르는 이탈리아
어린 로물루스가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였 에 오기 전에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 6세기 투
다. 르의 그레고리우스 주교가 쓴 《프랑크족 역사》
오레스테스가 권력을 잡았을 당시 이탈리아 에는 오도아케르가 451년 아틸라의 갈리아 원
에는 다양한 만족(蠻族) 출신들로 구성된 군대 정 이후 갈리아에 남아 프랑크족 킬레릭 왕과
가 로마군의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훈 제국이 동맹을 맺고서 갈리아를 침략한 알라만족을
무너진 후, 그 휘하에 있던 다양한 게르만 부족 격퇴하였다고 한다. 이 진술이 사실이라면 그
출신들이 로마의 용병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는 훈 제국의 갈리아 지역 책임자 같은 역할을
그러한 게르만 용병부대를 이끈 사람이 오도아 하였을 것이다.
케르였는데, 오도아케르는 위에서 언급한 아틸 아틸라 사후 그는 판노니아로 돌아와 그곳
라의 최측근 가운데 한 사람인 에데코의 아들 에서 스키리족의 왕이 된 부친의 통치를 도왔
이었다. 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고트족과 스키리족이
싸운 469년 볼리아 전투에서 부친 에데코는
스키리족의 왕자 오도아케르Odoacer 전사했던 것 같다. 그 이후 에데코는 사료에서
에데코는 아틸라의 사후 게르만계 부족의 하 더 이상 언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도아케르
나인 스키리족의 왕이 되었다. 그의 스키리족 는 전투에서 패배한 스키리족, 헤룰족 병사들
은 469년 판노니아 지배를 놓고 동고트족과의 을 이끌고 이탈리아로 간 것으로 보이는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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