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 - 대한사랑_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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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면 30억 원이 넘는 액수이다. 오도아케르는 주들의 땅을 일방적으로 빼앗지 않았으며 로
어린 황제를 죽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신이 마 제국의 중요한 통치기관이었던 원로원도 유
그 자리에 오르지도 않았다. 그는 원로원을 설 지하고 또 로마 귀족들 사이에서 콘술(집정관)을
득하여 동로마의 제논 황제에게 원로원 사절단 뽑아 통치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물론 게르만
을 보냈다. 사절단은 어린 아우구스투스 황제 족 병사들의 유지비용은 로마인들이 부담해야
가 입던 황제복을 비롯한 여러 가지 황제의 상 하였기 때문에 오도아케르는 이탈리아 귀족들
징물들을 동로마 황제에게 바쳤다. 이는 서로 을 설득하여 그 토지의 일부를 받아내어 병사
마 제국에는 더 이상 황제가 존재하지 않으며 들에게 나눠주었다. 그의 이러한 통치 방식 때
황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오 문에 이탈리아인들은 오도아케르에게 별로 반
도아케르는 동로마 황제의 대리인으로서 이탈 감을 갖지 않았다. 오도아케르는 로마인들이
리아를 통치하는데 만족하였다. 칭호도 로마 보기에는 이단에 불과한 기독교의 분파 아리안
황제가 제국의 실권자와 로마군 최고지휘관에 주의를 신봉하였지만, 가톨릭 교인들과 교회도
게 내리던 ‘파트리키우스’로 만족하였다. 그는 박해하지 않았다.
또 게르만족의 왕들을 일컫는 칭호인 ‘렉스’도
사용하였는데, 물론 그가 지배한 이탈리아의 동고트 왕 테오도릭Theodoric
왕을 의미한다. 이탈리아 반도 외에도 주변의 오도아케르의 평판과 영향력이 높아가자, 동
일부 지역이 그의 관할 하에 있었는데, 대표적 로마 황제 제논은 그를 점점 더 위험한 경쟁자
인 것이 노리쿰 주였다. 노리쿰은 그가 이탈리 로 여기게 되었다. 당시 두 개의 고트족 집단
아로 올 때 거쳐 왔던 곳으로 그곳에는 게르만 이 동로마 제국 영토 내의 발칸 반도에 정착하
계인 루기족이 장악하여 자신들의 왕국을 세웠 여 동로마 제국의 골칫거리였다. 콘스탄티노플
다. 오도아케르는 군대를 파견하여 이 루기족 에 인접한 트라키아의 고트족 집단 우두머리
왕국을 공격하여 무너뜨렸다. 그러나 군대를 는 ‘사팔뜨기 테오도릭(테오도릭 스트라보)’이라고
주둔시켜 통치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 주민들 불리는 사람이었는데, 동로마로부터 많은 돈
을 이탈리아 반도로 이주하도록 조처를 취하 과 고위 관직(트라키아 대장군직)을 받았다. 또 하
였다. 나는 ‘아말 가(家)의 테오도릭’이 이끄는 고트족
로물루스를 폐위시킨 476년부터 오도아케 집단이었는데, 볼리아 전투 이후 판노니아를
르가 살해되는 493년까지 이탈리아 왕 오도아 떠나 남쪽으로 내려와 발칸반도 여러 지역을
케르의 통치는 만족 왕의 통치라고는 믿기 어 장악하였다가 마지막으로는 아드리아 연안에
려울 정도로 상당히 온건하였다. 이탈리아 지 정착하였다. 당시 동로마 황제 제논은 이 두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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