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대한사랑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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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 충신열전 (4)
생애
농암의 절의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다른 여말 충신들 경
우와는 사뭇 달랐다. 농암 김주는 부(父) 증예의판서(贈禮儀
충 判書) 원로(元老)와 모(母) 수주김씨(水州金氏사이의 차남으로 고려말
신 1355년(공민왕 4) 선산 옥성 주아리에서 태어났다. 도개 농바우
(籠巖)에서 공부하여 농암 선생으로 불리웠으며. 주아리는 원
불 래 구주골이였으나 농암과 그의 형 백암(白巖)이 성인이 되기
전에 주서(注書)의 벼슬을 받아 동네 이름이 주아리(住兒里)로
사 바뀌었다고 전한다.
농 이 김주의 유년 시절은 동향인 야은 길재와 어울려 글과 학
암 군 문을 수학했으며 어린 나이에 주서(住書)에 급제하였고 약관
에 등과하여 벼슬에 올랐다.
1392년 (공양왕 4) 정순대부 예의판서로 하절사의 수장이
김 충 되어 명나라 남경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의주 관헌으
로부터 혁명(1392.7.17.조선개국)사실을 확인하고 3일을 통곡
주 정 하시며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의 글을 남기셨고, 1392
년 12월 22일 부인에게 자신의 뜻을 밝히는 서찰(오늘을 기일
의 공
생
애
글. 김교정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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