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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 중산국中山國의 위치는 산서성 중부 장치시長治市다

※주춘추전국 시대 하河는 황하를 나타내며 하내, 하서, 하동의 하河는 황하이고
                          산山은 태행산으로 산서, 산동에서 산山이 태행산이니  산융은 태행산의 융중산은 태행산 가운데(중中)으로 추정할 수 있다

 

 

■ 춘추전국시대 중산국中山國의 위치는 산서성 중부인 장치시長治市로 추정된다

※ 중산국(中山國)은 중국 북방의 유목민족인 적족(狄族)의 한 갈래로 백적(白狄)이라 불린 선우부(鮮虞部)가 세운 나라다

 중산국은 석가장시石家莊市 존재할 수 없다
1) 산서성 서남부가 도읍인 진晉나라, 魏나라가 하북성 중부에 있는 석가장시의 중산국中山國을 정벌하기에는 거리가 너무멀다
2) 조趙나라 도읍지인 한단시의 북쪽에는 연燕나라와 형邢나라가 존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https://namu.wiki/w/형나라

◎ 춘추전국시대 중산국中山國의 위치는 산서성 중부인 장치시長治市일 수 밖에 없다
1) 중산국은 진晉, 위魏, 조趙 세나라와 가까운 위치에 있을 수 밖에 없다
2) 중산국이 진晉, 위魏, 조趙 세나라를 침범하였기에 정벌한 것이다
3) 조趙 무령왕이
"지금 중산은 우리 뱃속 한가운데에 있고북쪽으로는 연나라가 있고동쪽으로는 동호(東胡)가 있으며, 서쪽은 임호(林胡), 누번(樓煩), 진나라, 한나라의 변경이니..." 라고 누완(樓緩)에게 말했다
 

 

■ 연燕나라 도읍지인 계(蓟)는 

조趙나라 북쪽인 형태시邢台市 바로 위쪽인 거록이다(주周나라 제후국의 북방한계선 무체無棣이니 호타하滹沱河다)

 

※주) 계薊연나라 도읍지로 요수로 둘러 쌓인 하북성 형태시(邢台市) 거록현(巨鹿县)

⊙ 『염철론鹽鐵論』‘험고險固’ “연나라는 갈석산碣石山에 의해 막히고, 사곡에 의해 끊겼으며, 요수遼水에 의해 둘러싸였다...중략...나라를 굳게 지킬 수 있으니 나라의 보배다" 라고 했으니,

⊙ 거록(巨鹿)의 서쪽은 갈석산(장석암)에 의해 막히고, 요수遼水에 둘러싸였고(요수인 부양하와 노장하) 남쪽은 사하沙河가 막고 있다

[출처]  갈석산碣石山은 장석암嶂石岩이고, 계薊는 형태시邢台市 거록현巨鹿县 이다 (daum.net)

 

※ 주周제후국의 북방한계선
주周초기인 성왕(成王)이 북쪽으로는 무체(無棣)까지 제후들의 정벌건을 제濟 태공에게 주었다

※ 齊환공 23년(기원전 663년), 산융(山戎)이 연(燕)나라를 공격하자 연나라는 제나라에 급히 알려왔다.
제 환공이 연나라를 구하러 나서 산융을 정벌하고 고죽(孤竹)에 이르러 회군했다.
 

 

■ 태행팔형(太行八陘)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에 태행산은 험준하여 넘기 힘들어 고대인들의 통행이 불편했다. 태행산에는 8개의 산맥 양측을 연결시키는 통로가 있다고대인들은 이를 '태행팔형'이라고 불렀다.

태행팔형은 남쪽부터 북쪽으로 차례로
경관형(輕關陘), 태행형(太行陘), 백형(白陘), 부구형(滏口陘), 정형(井陘), 비호형(飛狐陘), 포흠형, 군도형(軍都陘)이다
[출처] 태행팔형(太行八陘)중의 포음형(浦陰陘)의 역사



■ 진晉나라의 중산국中山國 정벌

진晉 소왕( 기원전 539년) 선우鮮虞(중산국)는 진(晋)의 장수인 순오(荀吳)의 공격을 받아 중인성이 함락되고연맹의 속국인 비(肥)와 고(鼓)가 진(晋)에 병합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진晉나라의 순오荀吳가 제나라 군과 회합하는 척 위장하고 선우鮮虞에게 길을 빌려 바로 석양昔陽(하북성 진현晉縣의 서쪽)으로 쳐들어 갔다. 가을 8월 임오일(10일), 비肥나라를 멸하고 군주 면고綿皋를 잡아 돌아갔다.
[출처] 춘추좌전 https://blog.naver.com/h2bluemoon/222061279249

진晉 정공 21년(기원전 489년)에 간자가 한단을 공격하자 중항문자(중항인)는 백인(柏人)으로 도망갔다.
간자가 다시 백인을 포위하자 중항문자와 범소자(范昭子)는 제(齊)나라로 도망쳤다.
조씨가 결국 한단과 백인을 차지했다.(※ 백인은 백적白狄사람이 사는 땅이니 중산국 땅이다)

 

■ 위魏나라의 중산국中山國 정벌

위魏 문후 17년(기원전 408년)에 중산(中山)을 토벌하여 자격(子擊)에게 그곳을 지키게 하고 조창당(趙倉唐)에게 보좌하게 했다.
서쪽으로 진(秦)나라를 공격하여 정(鄭)나라까지 이르렀다가 돌아왔으며, 낙음(洛陰)과 합양(合陽)에 성을 쌓았다.
[출처] 44-02/13[史記(사기) 세가(世家)] 권44.위세가(魏世家) (02/13) <위 헌자(魏 獻子), 위 환자(魏 桓子), 위 문후(魏 文侯)>

 

■ 조趙나라의 중산국中山國 정벌 및 멸망

조趙 양자 원년(기원전 457년)
양자의 누나는 대왕(代王)의 부인이었다.
양자는 간자의 장례를 치른 후 상복을 벗기 전에 북쪽 하옥산(夏屋山)에 올라 대왕(代王)을 초청했다.
요리사에게 쇠 국자를 들고 대왕과 그 수행원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게 하면서 술을 따를 때,
몰래 요리사 각(各)을 시켜 국자로 대왕과 그 수행원들을 쳐 죽이게 하고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대(代) 땅을 평정하였다. 그의 누나가 이 소식을 듣고 하늘을 향해 통곡하다가 비녀를 갈아 자살했다.
대 땅 사람들이 이를 가엾게 여겨 그녀가 죽은 장소의 이름을 마계산(摩笄山)이라 했다.
이어 대 땅을 백로(伯魯)의 아들 조주(趙周)에게 봉해 대성군(代成君)으로 삼았다.
[출처] 43-08/23[史記(사기) 세가(世家)] 권43.조세가(趙世家) (08/23) <조양자(趙襄子)>

조趙 헌후(기원전 424년)는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으며 중모(中牟, 학벽시鶴壁)를 도읍으로 삼았다.
[출처] 43-09/23[史記(사기) 세가(世家)] 권43.조세가(趙世家) (09/23) <환자(桓子), 헌후(獻侯), 열후(烈侯), 무공(武公), 경후(敬侯)>

조趙 경후 10년(기원전 377년)에 중산국과 방자현(房子縣)에서 교전했다.

조趙 경후 11년(기원전 376년) 중산국을 정벌하여 또 중인(中人) 땅에서 교전했다.

조趙 성후 6년(기원전 369년)중산국이 장성(長城)을 쌓았다.
[출처] 43-10/23[史記(사기) 세가(世家)] 권43.조세가(趙世家) (10/23)<조경후(趙敬侯), 조성후(趙成侯)>

조趙 무령왕 19년(기원전 307년) 봄 정월에 신궁(信宮)에서 조회를 성대히 거행하였다.
비의(肥義)를 불러 천하의 일을 논의했는데 5일 만에 끝났다.
무령왕은 북쪽으로 중산국과의 경계를 순시하여 방자현(房子縣)에 이르러 대 땅에 까지 갔으며, 
북쪽으로 무궁(無窮)에까지 이르렀고, 서쪽으로는 황하에 이르러 황화산(黃華山) 정상에 올랐다.

그후 누완(樓緩)을 불러 상의하며 말했다.
나의 선왕께서는 세상의 변화에 따라 남쪽 속국(屬國)의 땅을 넓히고,
장수(漳水)와 부수(滏水)의 험난한 지세를 연결하여 장성을 쌓았으며,
또 인(藺)과 곽랑(郭狼)을 탈취하고 임(荏)에서 임호(林胡)를 무찌르셨으나 그 공업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지금 중산은 우리 뱃속 한가운데에 있고북쪽으로는 연나라가 있고동쪽으로는 동호(東胡)가 있으며,
서쪽은 임호(林胡), 누번(樓煩), 진나라, 한나라의 변경이니, 강한 병력의 지원이 없으면
사직이 망하게 생겼으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세상에 뛰어난 명성을 가지면 반드시 세속의 비난이 있기 마련이니, 내가 호복(胡服)을 입고자 한다.”
누완이 “좋습니다.”라고 했으나 신하들은 모두 원치 않았다.

[출처] 43-13/23[史記(사기) 세가(世家)] 권43.조세가(趙世家) (13/23) <조 무령왕(趙 武靈王)>②

조趙 무령왕 21년(기원전 305년)에 중산국을 공격했다.
조소(趙袑)가 우군을, 허균(許鈞)이 좌군을, 공자 장(章)이 중군을 거느렸고, 무령왕이 삼군을 통솔했다.
우전(牛翦)은 전차와 기병을 지휘하고, 조희(趙希)는 호(胡)와 대(代)의 병사를 거느렸다.
조희는 군대를 이끌고 골짜기를 통과하여 곡양(曲陽)에서 군을 합류시켜 단구(丹丘), 화양(華陽), 치(鴟)의 요새를 공격하여 점령했다.
왕의 군대는 호(鄗), 석읍(石邑), 봉룡(封龍), 동원(東垣)을 탈취했다.
중산국이 4개의 읍을 바치며 강화를 청하자 왕이 이를 허락하고 군대를 철수시켰다.

조趙 무령왕 23년(기원전 303년)에 중산을 공격했다.

조趙 무령왕 26년(기원전 300년)에 다시 중산을 공격하여 북쪽으로 연나라와 대나라까지, 서쪽으로 는 운중(雲中)과 구원(九原)에까지 이르는 땅을 탈취했다.
[출처] 43-15/23[史記(사기) 세가(世家)] 권43.조세가(趙世家) (15/23) <조 무령왕(趙 武靈王):주부(主父), 조 혜문왕(趙 惠文王)>

조趙 혜문왕 3년(기원전 296년)에 중산을 멸망시키고 그 왕을 부시현(膚施縣)으로 옮겼다.
[출처] 43-15/23[史記(사기) 세가(世家)] 권43.조세가(趙世家) (15/23) <조 무령왕(趙 武靈王):주부(主父), 조 혜문왕(趙 惠文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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