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동포를 구하라.”(베델. 1909년 5월 1일 사망)
📌 배설과 <대한매일신보>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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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일: 1904년 7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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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창간자: 베델(영국 언론인), 양기탁(대한제국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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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폭로하고 항일 민족의식을 고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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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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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 안창호, 장지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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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검열을 피하기 위해 영국인 명의로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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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부수 약 17,000부 – 당시 최대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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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일 언론의 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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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 비판, 국채보상운동 홍보, 명성황후 시해사건 보도,
헤이그 특사 활동 보도, 항일 무장 투쟁 홍보 -
고종 황제의 신임: 특허장 및 자금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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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가장 두려워한 신문으로, 이토 히로부미조차 경계
📌 일제의 3차례 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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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1차 재판: “공안 침해 우려” – 벌금 30파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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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2차 재판: 친일 인사 피살사건 보도 – 금고형 + 근신 6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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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이전: 양기탁에게 국채보상금 횡령 누명 → 실패했지만 결국 두 사람 모두 사임
📌 순국과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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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5월 1일, 심장병으로 사망 (향년 3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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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동포를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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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마리 모드 게일: 석 달 후 영국 귀국, 평생 남편을 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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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매일신보>**는 일제에 넘어가 **<매일신보>**로 개명되어 친일 매체로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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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국채보상운동 (1907)
“나라의 빚은 우리가 갚자!”
🕰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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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 차관 1,3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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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자주정신의 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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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이전 최대 규모의 경제자립운동
👥 참여 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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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돈: “담배를 끊어 나라 빚을 갚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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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제: 운동 확산에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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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 45개 여성단체, 패물 헌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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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국채보상연합회의소 초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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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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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마리아: 은금폐지부인회 참여
🗺 전국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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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각지 100여 곳 이상에 국채보상소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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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지역: 대구, 부산, 평양, 전주, 제주, 함흥 등
📉 결과와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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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원인: 일제의 탄압, 베델·양기탁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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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의연금은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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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가치: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 기념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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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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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보상운동 여성기념비